대부분의 정책과 정책 발표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게 된다. 지방 도시의 공동화와 첨단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심각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인 조치나 투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그 이면에는 ‘생태계’를 고려하지 못한 정책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지방 도시를 살리겠다며 무분별하게 조성된 혁신도시는 역설적으로 ‘독수공방’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남편이나 아내가 혁신도시로 발령받더라도 배우자가 취업할 일자리가 없다면 해당 지역으로 이주하기 어렵다. 이는 혁신도시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만큼이나, 동반 이주하는 배우자를 위한 고용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는 ‘생태계’적 관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신도심에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기존의 원도심은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지방 도시가 많다. 이는 도시 전체의 균형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인 개발만을 추진한 결과로, ‘종 다양성’이 부족한 생태계처럼 도시 전체의 활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창원과 부산 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마음의 거리’는 멀게 느껴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동차가 없으면 출퇴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청년들은 ‘통근 전철’과 같은 연결성을 간절히 원하지만 타당성 검토에서 늘 난항을 겪는 것은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파운드리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단일 기업의 기술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파운드리 산업은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패키징 및 후공정 등 다양한 전문 기업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협력 생태계 구축에 있어 TSMC에 비해 IP 파트너 수에서 10배, 패키징 기술에서는 10년이라는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결국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산업 전체의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에 해당하는 복잡한 협력 구조를 얼마나 잘 구축하고 관리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임을 시사한다.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은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바뀐 지 오래지만, 삼성전자는 이러한 변화를 늦게 인지했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세상일의 대부분은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작동하며, 이를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 지방 도시의 공동화와 혁신도시의 한산함, 그리고 첨단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모두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물었다면, 그는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함에 있어, 복잡하게 얽힌 관계와 순환 구조를 이해하고 ‘종 다양성’,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그리고 ‘개방성과 연결성’이라는 생태계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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