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책 결정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형식적인 추진에 그치면서 오히려 지방 도시의 공동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추진된 각종 개발 정책이 원도심의 쇠퇴와 혁신도시의 활력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간과한 정책은 그 효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가짜’ 정책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2년 대선 당시 ‘경제’를 핵심 구호로 내세워 승리한 사례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것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높은 인기를 넘어서기 위해 클린턴 캠프의 제임스 카빌은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를 통해 당시 미국 경제 침체와 실업 증가라는 유권자들의 실제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경제 상황이라는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가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선거 승리로 이어진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생태계의 번성을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는 ‘종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종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협력하며 생태계 전체의 안정성을 지탱한다.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수정을 돕거나 분해 및 재생산 과정을 담당하는 등 각기 다른 역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일 품종의 감자에만 의존했던 생태계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 비극적인 사례로, 1845년부터 1852년까지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감자역병은 종 다양성의 붕괴가 가져올 수 있는 재앙을 경고한다.
둘째는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다. 태양 에너지를 시작으로 식물을 거쳐 동물과 미생물로 이어지는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물질의 끊임없는 순환은 생태계의 유지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쓰러진 나무가 곰팡이, 버섯, 세균 등 다양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다시 토양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물질 순환의 대표적인 예이며, 이러한 순환 구조가 단절되면 생태계는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다.
셋째는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고립된 생태계는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가 단절되어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고 점차 취약해진다. 외부와의 지속적인 교류는 생태계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합스부르크 증후군’으로 알려진 근친교배의 폐해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반복되는 짝짓기가 초래하는 필연적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이는 개방성과 연결성이 생태계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가 간과된 개발 정책은 지방 도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방 도시 활성화를 명분으로 조성된 혁신도시는 젊은 부부들의 이주를 유도하기에 근본적인 조건이 부족하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현대 사회에서 배우자가 일할 자리가 없다면, 혁신도시로의 발령이 오히려 가족 해체로 이어질 수 있어 이주를 꺼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일자리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시설만 조성한 결과이다.
또한, 인구 증가 없이 신도심에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건설하는 정책은 기존의 원도심 공동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가 ‘유령 도시’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도시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진 명백한 증거이다. 창원과 부산의 지리적 근접성에도 불구하고 지역 청년들이 느끼는 ‘500km’의 심리적 거리는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이 어려운 현실에서 비롯된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통근 전철’과 같은 사회 기반 시설 확충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난항을 겪는 이유 역시 생태계적 관점의 부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에서 대만 TSMC에 뒤처지는 이유 역시 복합적인 생태계 구축 실패에 있다. 파운드리 산업은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통해 발전한다. USB 포트와 같은 부품 설계를 매번 새로 하지 않고 IP 회사로부터 구매하는 과정, 설계 회사가 파운드리의 공정에 맞춰 설계를 최적화하는 과정, 그리고 칩을 구운 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패키징 기술까지, 삼성전자는 이러한 생태계의 각 단계에서 TSMC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IP 파트너 수에서 10배, 패키징 기술에서 10년 뒤처지는 현실은 반도체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단독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세상일 대부분이 고유의 생태계 안에서 움직이며, 이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마치 해가 지면 어두워지는 원도심과 사람 없이 텅 빈 혁신도시처럼, 생태계를 살피지 못한 정책은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킨다. 만약 클린턴에게 지금의 상황을 묻는다면, 그는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