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심각한 내수 부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유지한 것은 금융위기 시기와 맞먹는 수준으로, 가계 소비의 일부 개선에도 불구하고 건설 투자 부진과 수출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건설 투자 부진은 우리 경제의 내부 문제이기에 정부 정책과 의지에 따라 개선이 가능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내수 취약성은 1990년대 초 급변한 대외 환경 속에서 비롯되었다. 고도 성장이 막을 내린 시기, 소득 분배는 악화되었고 기업은 고용 및 임금 인상 억제, 비정규직 선호, 생산 자동화,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충격의 비용은 고스란히 가계,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전가되었고, 이는 경제의 핵심 동력인 가계 소비의 역할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90년대 이후 가계에 전가된 충격의 결과는 명확하다. 외환위기 이전 5년간 가계당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실질 가계소비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이 각각 4.8%와 7.1%였던 것에 반해, 외환위기 이후 27년간은 각각 0.7%와 0.8%로 급감했다. 지난 30년 넘게 가계의 소득과 소비가 억압된 공백은 ‘경제 모르핀’이라 할 수 있는 가계부채로 메워졌고, 이는 소비와 성장 둔화를 가속화하며 악순환을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증가분보다 부동산 자산 증가분이 훨씬 큰 현상으로 뒷받침된다.
문제는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 고금리라는 삼중고 속에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더 이상 가계부채를 동원한 부동산 재테크에 나서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가계부채 감소세 전환, 지방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침체, 건설 투자 성장 기여도의 지속적인 마이너스 기록은 가계 소비의 구조적 취약성과 건설 투자 침체의 근원이 가계 소득 억압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따라서 가계 소득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물론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 배포가 소상공인 매출 증대에 일부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는 일시적인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칠 뿐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국가 재정 부담 또한 반복적인 소비쿠폰 지급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배경에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 소득 지원, 그리고 그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의 도입이 시급하다.
정기적인 가계 소득, 즉 ‘사회 소득’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고 사회 유지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기여도에 따라 분배되는 ‘시장 소득’과 대비된다. 사회 소득 수준을 국제 기준으로 비교할 때, 한국의 사회 지출 규모(GDP 대비)는 OECD 평균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2024년 기준 OECD 평균 사회 지출 비율은 21.229%지만, 한국은 15.326%로 하위 그룹에 속하며, 이는 국민 1인당 약 300만 원의 사회 소득이 부족한 셈이다.
이러한 사회 소득의 절대적 과소와 시장 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 그리고 시장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는 한국 가계 소비 지출의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킨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0.1%는 세후 월평균 실질 수입이 1억 2215만 원에 달하는 반면, 중위 50%는 215만 원에 불과하며, 소득 창출 활동자 평균 월수입은 282만 원이다. 하위 41%는 최저임금 기준 월수입에도 미치지 못하는 끔찍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정기적인 사회 소득 도입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완화하고, 지역화폐 지급을 통해 소상공인의 매출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 재원 마련을 위해 현행 불공정한 조세 체계의 수술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최고 개인소득세율은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낮지 않지만,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이 낮은 이유는 표면상 소득세율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도한 공제 혜택은 소득이 높을수록 더 큰 감세 혜택을 제공하며, 이는 재분배 효과를 심각하게 저해한다. 2023년 기준, 약 101조 원의 세금이 공제 혜택으로 줄어들었으며,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았다.
현행 공제 방식을 폐지하고 확보한 세금을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의 지급이 가능하다. 이는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90% 이상의 국민에게 순혜택을 제공하며, 재분배 효과 또한 크다. 결국,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개혁하여 정기적 사회 소득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득 및 소비 지출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내수 취약성을 극복하고 AI 대전환 시대에 대비하는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