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를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허울뿐인 가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 곳곳의 빈집과 유령 도시화된 원도심, 그리고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기업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바로 ‘생태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과거 미국 대선 당시 경제 침체라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를 내세워 유권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사례처럼,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여러 문제 역시 ‘생태계’라는 키워드로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도심은 해가 지면 사람이 사라지는 두려운 공간이 되고, 혁신도시는 텅 빈 채 독수공방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조성된 혁신도시와 신도심이 기존 도시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현실에서 한 배우자만 혁신도시로 발령 날 경우, 배우자가 일할 일자리가 없어 결국 정착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는 혁신도시가 직장인 개인에게는 ‘발령’이라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라도, 가족 전체의 ‘정착’이라는 생태계를 고려하지 못한 정책의 실패를 보여준다. 또한, 인구 증가 없이 무작정 신도심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정책은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을 심화시켜, 대부분의 지방 도시가 ‘유령 도시’로 전락하는 중병을 앓게 만들고 있다.
도시 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현상도 생태계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창원과 부산의 사례처럼,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청년들은 서울로 향한다.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통근 전철’이지만, 타당성 검토에서 늘 난항을 겪고 있다. 이는 교통망 구축이라는 개별 사업의 타당성만을 볼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생활 반경, 직장과의 연계성, 그리고 통근 가능 시간이라는 도시 생태계 전반을 고려한 접근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산업 현장에서도 이러한 ‘생태계’에 대한 이해 부족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가 대만의 TSMC에 뒤처지게 된 배경에는, 파운드리 생태계 전체를 보지 못한 전략적 오류가 존재한다. 파운드리 산업은 칩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제조, 그리고 패키징 및 후공정까지 여러 주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잡한 생태계를 이룬다.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숫자나 패키징 기술 등에서 TSMC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으며, 이는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직 적층 및 수평 결합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생태계 구축에 소홀했던 점이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일의 대부분은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며, 이를 고려하지 못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과거 빌 클린턴 캠프가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로 당시 미국이 직면한 경제 침체라는 문제를 해결했듯,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도시 공동화, 지역 소멸, 산업 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 역시 ‘생태계’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클린턴에게 물었다면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을 했겠지”라며, 앞으로의 정책과 산업 전략 수립에 있어 생태계적 관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