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28일 ‘세계산업안전보건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산업 현장의 반복되는 사고들은 우리 사회에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통계나 업무상의 변수로 치부할 수 없는, 한 개인의 생애를 송두리째 바꾸고 공동체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기는 사건이다. “우리는 과연 충분히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산업안전은 기술적 과제를 넘어 사회의 윤리적 성숙과 인문적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약 13만 6천 명의 산업재해자와 2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광업, 건설업, 제조업에서 사고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었으며, 소규모 사업장과 제조업의 기계 관련 사고가 두드러졌다. 이는 특정 업종만의 문제가 아닌, 산업 전반의 구조, 문화, 기술 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다. 해외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270만 명이 산업재해나 직업병으로 사망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매 15초마다 한 명이 일터에서 생명을 잃는 셈이며, 개발도상국에서는 특히 열악한 안전관리 체계와 인력 부족으로 사고 발생률이 높고 대응 역량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반면, 일부 선진국은 AI 기반 예측 시스템과 디지털 전환을 통해 산업안전 수준을 체계적으로 끌어올리며 위험 요소를 조기에 감지하고 시스템 중심의 대응 체계를 갖추려는 정책적 움직임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최근 정부는 산업재해 대응 방식을 ‘예방’에서 ‘예측’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2025년부터 추진되는 ‘제조안전고도화기술개발사업’은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업종별 사고 사례를 기반으로 AI 기술을 적용하여 사고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식별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초기 적용 업종으로는 이차전지, 석유화학, 섬유 등이 선정되었는데, 이들 업종은 단일 사고의 규모가 크고 반복되는 사고 유형이 뚜렷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예를 들어, 2024년 6월 화성시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는 31명의 사상자를 낳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섬유 산업의 경우, 수작업 공정이 많아 끼임, 절단, 넘어짐 등 인적 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으며 유해 물질 사용도 빈번하다.
산업안전의 기술적 접근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사고 유형별로 수년간 누적된 데이터(예컨대 끼임 사고는 2017~2021년 사이 총 3만 8584건에 달함)를 기반으로, AI가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판단하도록 학습하는 시스템은 이미 이론을 넘어 실증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정부는 ‘제조안전 얼라이언스’라는 협업 구조를 통해 기업, 연구기관, 지자체가 함께 데이터를 공유하고 현장에서 기술을 실증하는 체계를 마련하며, 이러한 방식은 기술의 현장 적합성을 높이고 제조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실제로 조선업계에서는 이미 실증된 AI 기반 안전 시스템이 해외 수출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그러나 기술의 적용은 결코 기술 자체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공정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작업자가 다양해지며, 작업 환경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오늘날, 안전은 숙련이나 경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 되고 있다. 기술은 예측과 판단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 기술이 현장에 맞게 설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업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산업안전은 단순히 자동화 기기나 정교한 시스템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그것을 운영하고 적용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보호하려는 조직의 의지와 문화가 함께 만들어져야 진정한 안전이 가능하다.
결국 모든 기술적 진보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산업안전 기술은 설비가 아닌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AI 기술은 작업자의 스트레스, 행동 이상, 피로도 등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고령자, 외국인 근로자, 신규 인력 등 다양한 취약계층을 고려한 포용적 기술 또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현장 구성원의 인식과 조직 문화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술, 정책, 사람이라는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변화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산업 현장의 노동이 더 이상 생명의 위험과 맞바꾸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은 그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며, 궁극적으로 그 중심에는 사람과 사회 전체의 선택이 자리한다. 산업안전은 특정 업종의 과제가 아니라, 고도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단일 현장의 사고라도 특정 지역을 넘어 국가 시스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에 대한 작지만 꾸준한 관심과 낯선 현장의 리스크에도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이 시대의 안전 문화를 이루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산업재해는 사회의 기술 역량뿐만 아니라 윤리적 성숙도를 비추는 거울이며, 안전은 비용이 아닌 책임이고, 예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