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날 공원에 모인 어르신들이 낡고 고장난 등받이 의자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 문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멀쩡한 평상형 벤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이 굳이 낡은 의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지자체에서 조성한 공공시설이 실제 이용자인 어르신들의 불편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어르신들은 등받이가 없는 벤치보다 등받이가 있고 좌판에 쿠션이 있는 낡은 의자에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여름철 뜨겁고 겨울철 차가운 벤치보다, 허름하더라도 안락함을 주는 의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경험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모든 세대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주거, 마을, 도시, 지역 정책이 실질적인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책 대상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현장의 불편함을 면밀히 살펴야 함을 역설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가 어르신들의 삶을 파악하기 위한 대표적인 국가승인 통계로 활용되고 있다. ‘노인실태조사’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건강, 기능 상태, 돌봄 실태 등을 조사하며, ‘주거실태조사’는 전국의 가구들을 대상으로 주거 현황과 만족도를 조사한다. 이러한 조사는 “집에 방은 몇 개입니까?” 또는 “몇 년 거주하셨습니까?”와 같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데 집중한다. 물론 이러한 통계는 어르신들의 평균적인 삶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정작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구체적인 불편함이나 어려움까지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와 같은 사실 확인 중심의 조사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의 실제적인 불편함은, “집 현관 이용에 무엇이 불편하십니까?” 또는 “공원 시설물 이용에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요?”와 같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생활 환경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직접 들어보는 조사가 결합될 때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 커뮤니티 정책연구센터가 2021년 발간한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도시공간”은 이러한 경험 체크식 조사의 중요한 예시를 제공한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어르신들은 화장실의 높은 욕조 때문에 들어가고 나오기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느끼며, 이는 어르신에게 적정한 높이와 충분한 너비의 욕조, 앉고 서기 편안한 변기, 미끄럼 방지 바닥재 및 안전손잡이 설치 지원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또한, 외부 활동 시에는 고르지 못한 보도블록이나 짧은 보행 신호 때문에 낙상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결과는, 어르신들에게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을 위한 보행 신호 시간 조정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6~2030)이 수립되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러한 어르신들의 생생한 일상 경험과 불편함이 정책 수립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시설이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의자 대신 안락한 휴식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어르신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국민 체감형’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모든 세대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원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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