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관세 부과 시한을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된 한미 무역 협상 결과를 둘러싸고 다각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합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한 절대 평가, 공간을 기준으로 한 상대 평가, 그리고 전지적 트럼프 시점에서의 평가라는 세 가지 기준을 통해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분석은 한국이 향후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가장 먼저 시간축에서의 절대 평가를 살펴보면, 이번 합의는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와 비교했을 때 한국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상호 관세와 자동차 품목 관세 각각 15%의 결과는 어렵게 구축된 한미 경제 협력 템플릿을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향후 정상회담에서 비관세 장벽 완화,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추가적인 요구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비망록 형태로 합의가 이루어져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점 또한 우리에게 크나큰 손실로 작용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공간축에서의 상대 평가, 즉 한국의 주요 경쟁국과의 협상 결과와 비교하는 시각도 중요하다.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유럽연합(EU) 등 핵심 동맹 제조국과도 협상을 진행했으며, 한국은 이들 국가와 동등한 수준의 관세율(상호 관세 15%, 자동차 품목 관세 15%)을 얻었다. 특히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조선 협력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한 점이 주효했다. 또한, 개방하더라도 경쟁국에 비해 추가적으로 얻을 것이 적은 국내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았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결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세 번째 기준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전지적 트럼프 시점에서의 평가다. 약 40년간 자유무역 비판 광고를 게재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에서 이번 합의는 그의 숙원 사업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경제 안보 동맹 재편이라는 큰 그림의 일환으로, 한국을 비롯한 핵심 동맹국들을 미국의 ‘중국 거대포위 구상’ 실현을 위한 ‘15% 클럽’에 편입시킨 것이다. 이러한 구상에는 베트남, 대만, 인도 등이 추가될 예정이며, 멕시코와 캐나다 역시 USMCA 공동 검토를 통해 ‘북미 요새론’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체스판의 한 말이 된 셈이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장기적으로 동맹국 및 우방국의 불만을 야기하며 미국의 고립과 쇠퇴를 초래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한미 관계뿐 아니라 세계 질서의 변곡점을 의미한다.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패권국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한국 역시 미국에 조선, 반도체 등 줄 것이 많은 나라가 되어 ‘15% 클럽’ 회원으로 편입되었다. 트럼프 시각에서 한국이 유용한 동맹으로 부각되며 ‘한미 동맹 2.0’이 시작되었다는 점은 냉혹한 현실에서 절대 평가나 상대 평가보다 훨씬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이에 한국은 단기적으로 곧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추가 요구를 최소화하고, ‘악마는 디테일(no detail)’에 있다는 이번 합의의 독특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미국 동향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관세 전쟁의 향배는 미국 내 상황에 달려 있으며, 트럼프발 상호 관세로 인한 효과는 상호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가중 평균 실행 관세율이 크게 폭증할 전망이므로, 향후 관세 조치가 트럼프에게 미칠 악영향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물가 상승이 가시화되는 8월 말 이후에는 한미 FTA에 따른 경쟁 우위를 상실한 산업계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다. 또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의 운명도 지켜봐야 하며, 위헌 판결 시 상호 관세 환급 및 재협상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중장기 전략으로는 한국의 ‘15% 클럽’ 가입이 향후 대중 제조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으며, 앞으로 미중 패권 경쟁 체스판에서 미국은 한국에 안보 비용 분담, 주한미군 및 한국군 역할 변경 등 ‘공정한 비용 분담’을 압박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신속히 경제 안보 전략을 수립하고, 예측 불가능한 한미 관계에 원칙 있는 능동적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은 제조업이 경제와 안보의 든든한 동앗줄임을 입증했으므로, 핵심 제조업의 과도한 대미 투자가 국내 산업 공동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AI, ICT, 그린 기술과 접목하여 미국 투자 여건보다 우수한 국내 제조 혁신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는 수출 시장 다각화와 더불어 대외 의존적인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대수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건실한 내수 진작과 남북 경제 협력을 통한 내수 시장 외연 확대가 핵심이다.
‘15% 클럽’ 내에서는 강대국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경제 안보 협력을, ‘15% 클럽’ 밖에서는 규범 기반 다자 무역 질서 복원에 나서야 한다. 패자를 양산하는 자유 무역이 아닌, 포용적 자유 무역을 지향해야 한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추진 체계 강화 또한 시급하며, 대통령실, 정부, 국회, 산업계, 시민사회가 총력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