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맞닥뜨리는 막막함은 경제적인 문제만큼이나 부부 관계의 균열을 야기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현역 시절 각자의 세계에서 살았던 부부가 퇴직 후 남편의 ‘상시 동거’로 인해 겪는 갈등은 일본의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 즉 ‘부원병(夫源病)’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 현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부부 갈등이 중년·황혼 이혼율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노후 행복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퇴직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 수기 공모에서조차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난무할 정도로 많은 퇴직자들이 갈 곳 없는 상황에서 오는 상실감을 토로했다. 한 고위직 공무원의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퇴직 후 3개월간의 ‘신나게 놀아보자’는 계획은 곧 답답함으로 변했고, 특히 아침에 일어나 아내의 눈치를 보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취업을 시도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그는 주간노인보호센터에서 하루 5~6시간 일하며 월 70만 원과 건강보험료 30만 원을 벌어 집에 기여하게 되었고, 이후 “그렇게 무섭던 아내가 천사로 바뀌었다”는 고백을 했다. 이는 퇴직 후 단순히 경제 활동을 넘어,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유지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부부 관계 안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이러한 현상은 TV 토크쇼에서 방청객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퇴직한 남편이 낮 동안 집에 있는 상황에 대해 남녀 참여자 대부분이 ‘불편을 느낀다’고 답했다. 여성들은 남편의 수발을 들거나 서투른 집안일, 잔소리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남성들은 아내에게 짐이 되는 것 같다는 눈치 때문에 오히려 집안일을 돕다가 사소한 실수로 핀잔을 들으면 서글픔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부부가 서로 다른 삶의 공간에 존재하던 시기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성격, 생활 습관 등이 퇴직 후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 20년 이상 혼인 지속 기간을 가진 중년·황혼 이혼의 비율이 1990년 14%에서 2023년 23%로 증가했으며, 이혼 사유 중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 이십수 년간 전반적인 이혼율은 낮아졌지만, 전체 이혼 건수에서 중년·황혼 이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5%에서 2023년 36%로 급증했다. 이는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노후 문제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노후 설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 후 부부 화목을 위한 특별한 노력을 강조한다. 특히, 낮 동안 부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이는 수입을 얻는 일, 사회 공헌 활동, 취미 활동 등 자신이 원하는 활동에 몰두하며 개인적인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노후 설계 전문가 오가와 유리 씨는 퇴직 후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은 ‘낮에는 집에 없는 남편’이라고까지 언급하며,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결론적으로, 퇴직 후 노후자금 마련만큼이나 부부 화목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퇴직 후에도 각자의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사회공헌활동, 취미 활동 등 자신만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동반될 때, 비로소 안정적이고 행복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부부 관계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신 건강과 사회적 만족도를 높이는 필수적인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