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국내 전력도매시장이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20여 년간 화석 연료 중심의 발전원 구성 하에서는 큰 문제 없이 작동해왔던 전력도매시장은 이제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성 증가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며 효율성 저하라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전력도매시장은 발전사들이 생산한 전력을 한국전력공사가 구매하는 시장으로, 전력거래소가 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출력은 기상 조건에 따라 예측이 어렵고 변동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변동성은 단순히 전력 공급뿐만 아니라, 기업과 가정이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려는 움직임으로 인해 전력 수요 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하루 단위 전력거래량의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전력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그림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는 시간대별 최대 거래량은 상승시키는 반면, 최소 거래량은 하락시키는 현상을 야기한다. 이는 재생에너지 출력이 많을 때 전력 시장으로부터의 수요가 감소하여 발생하는 현상으로, 최대와 최소 거래량 간의 격차가 커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간극은 전력 시스템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러한 변동성에 대응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수요반응(DR)과 같은 설비의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규 투자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전력도매시장 내에서 해당 설비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체계, 즉 가격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이상적인 전력도매시장은 전력량뿐만 아니라 발전설비 용량 확보에 대한 보상인 용량 가격, 그리고 실시간 수급 균형과 전력 시스템 안정화 기능을 수행하는 보조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별도로 구분하여 보상하는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가격들은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발전설비의 시장 진입 및 퇴출, 그리고 시장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국내 전력도매시장의 현재 가격 결정 방식은 이러한 이상적인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먼저, 전력도매가격은 정부가 연료비를 기반으로 변동비를 평가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변동비가 거의 없는 재생에너지나 ESS의 시장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전력 과잉 공급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어떤 재생에너지를 제어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이 어려운 실정이다.
용량 가격 또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는 설계 수명 연한이 도래하는 발전설비를 기준으로 고정투자비를 평가하고 물가 상승과 목표 예비력을 반영하여 조정하는데, 이는 새로운 기술이나 환경 규제, 금융 비용 변화와 같은 실질 투자비의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게 만든다. 더욱이, 이러한 결정 방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량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는 형태로 결정되어, 전력도매가격과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미래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시장의 유연성을 저하시킨다. 영국과 같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따라 용량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던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국내 용량 가격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조서비스 가격 결정 방식 역시 개선이 시급하다. 보조서비스의 공급량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국내에서는 보조서비스에 배정된 금액을 직전 연도의 실적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최근 몇 년간 배정액 규모가 변하지 않으면서, 보조서비스 수요가 많았던 해일수록 오히려 다음 해의 보조서비스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보조서비스 수요 증가 상황에서 투자 유인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경직적인 가격 체계는 ESS와 같이 전력도매시장에서 필수적인 자원들이 투자되고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전력도매시장의 가격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 주도의 변동비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발전사들이 재생에너지를 포함하여 스스로 가격을 입찰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며, 용량 및 보조서비스 가격 역시 수요에 연동되어 결정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시장 기능 강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문제점들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해외 사례에서 나타났던 일부 발전사의 시장 지배력 남용 및 가격 조작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규제 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전력도매시장의 가격 변화와 소매요금 간의 연계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도매시장에서 가격이 변동하는 상황에서도 소매요금이 경직적으로 유지된다면, 한전의 적자가 누적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소매요금 역시 도매시장 가격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개선을 통해 비효율성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