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 발전의 근간을 이루는 반도체 생산이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낡은 규제에 발목 잡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국내 총수출액의 20.8%를 차지하며 국가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반도체 산업이 AI 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공장 건설 및 운영 과정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인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반도체 공장 건설 및 운영에 있어 현장과 괴리가 큰 소방, 에너지, 건설 관련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여 기업의 부담을 덜고 AI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9월 11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반도체 기업인 및 현장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총리는 반도체가 AI 구현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며, “반도체는 AI 산업 발전의 쌀로 비유될 만큼 AI가 구현되는 모든 기기의 핵심 요소”라고 언급했다. 그는 기업 현장의 의견을 경청한 후, “기업에 불합리하거나 과도한 규제가 없는지 업계 의견을 끊임없이 경청해 반도체공장 건설·운영에 현장과 괴리가 큰 소방·에너지·건설 관련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한다”고 밝혔다.
이번 규제 개선은 크게 세 가지 영역에 걸쳐 이루어진다. 첫째, 소방 규제의 합리화다. 현재 법령상 건물의 11층까지는 실제 높이와 무관하게 소방관 진입창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은 한 개 층의 층고가 8m로 일반 건축물보다 3배 높아, 6층 이상일 경우 사다리차가 닿지 않는 높이임에도 법령에 따라 진입창 설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진입창 설치 기준에 층고뿐만 아니라 높이 기준을 추가하여, 11층 이하라도 44m 초과 시에는 진입창 설치를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한다. 또한, 현행 40m마다 소방관 진입창을 설치해야 하는 규정도 유연하게 적용할 방침이다. 반도체 공장의 특성상 클린룸 등 창 설치가 어려운 구조가 많고, 40m가 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40m마다 설치가 어려운 경우, 소방서 검토를 거쳐 구호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곳에 진입창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둘째, 층간 방화구획 설정 기준을 개선한다. 현행법상 계단실, 복도, 승강기는 층간 방화구획 설치가 면제되지만, 설비배관은 의무화되어 있다. 반도체 공장은 설비 배관의 크기가 매우 크고 라인 수가 많아 방화구획 공사에 높은 난도와 비용, 기간이 소요된다. 또한, 공장 운영 중 배관 추가나 이동이 잦아 일률적인 방화구획 시공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에 정부는 올해 하반기 중 층간 방화구획을 설정하는 대신, 배관통로 내부에 스프링클러 등 소화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등 현장에 맞는 효과적인 안전 담보 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더불어,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 공장 건축 시 안전성을 담보하면서도 유연한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네거티브 방식인 성능기반 설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셋째,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 적용 제외 특례를 도입한다. 현행 법령상 반도체 팹과 같은 대규모 에너지 사용 기업은 분산에너지 설비 의무 설치 대상이다. 그러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대규모 발전소 건설이 예정되어 있어, 인근 지역 생산 에너지를 사용하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분산에너지 설비 설치 규제가 발생한다. 이에 정부는 동일 산단 내 의무 설치량 이상의 발전설비 설치 또는 예정 시 분산에너지 설비를 추가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특례 기준을 마련하여, 인근 지역 에너지 생산·공급을 유도하는 분산에너지법의 취지를 살릴 계획이다.
김 총리는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불합리한 규제는 신속히 개선하되, 건설 현장에서 자칫 안전 문제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안전사고 예방에도 힘을 쏟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규제 개선을 통해 반도체 산업은 AI 시대를 맞아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