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 수교 140주년을 맞은 해,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영국 런던의 주영한국문화원에서는 ‘미음완보, 전통정원을 거닐다(Strolling Through Korean Gardens)’라는 이름의 전시가 9월 1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1월 14일까지 펼쳐진다. 이는 국가유산청과 주영한국문화원이 공동 개최하는 행사로, 단순한 정원 감상을 넘어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의 의미처럼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내면을 성찰하는 한국 전통정원의 심미적 가치를 영국에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영국이 1883년 수교 이래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서 이어온 우호 협력을 바탕으로, 특히 정원이라는 매개를 통해 국제 협력과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동안 국가유산청은 전통정원을 디지털 정밀실측 데이터로 구축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결과물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이며, 그동안 일부 전문가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되었던 정밀 데이터를 영국 국민들이 한국 전통정원을 쉽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제공한다. 이와 같은 시도는 국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어 지난해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처음 소개된 후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추가 전시가 예정될 정도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전시는 총 네 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어 한국 전통정원의 다층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먼저 도입부인 ‘로비프로젝트’에서는 한국 전통정원 도록, 국가유산청의 자연유산 관련 서적 및 영상 자료를 통해 한국의 전통 조경을 소개한다. 특히 차 문화가 발달한 영국인을 위해 한국의 다도 체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전통정원에서 선조들이 향유했던 방식 그대로 한국과 영국의 정원 문화를 공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이어지는 1부 ‘왕과 선비의 안식처’에서는 궁궐정원인 창덕궁 후원의 사계절 풍경과 함께, 별서정원으로 분류되는 보길도 윤선도 원림, 담양 소쇄원, 담양 명옥헌 원림, 화순 임대정 원림을 마치 직접 거니는 듯한 생생한 체험으로 제공한다. 더불어 천원지방 사상에 근거한 방지원도 양식의 구조와 의미를 재해석하고, 미디어매핑을 활용하여 동아시아 우주론이 정원 조성 및 향유 방식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설명한다.
2부 ‘차경으로 즐기는 찰나’는 주변 자연경관을 빌려 정원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차경’ 기법을 영상으로 구현하여, 정원 내부에서 외부 자연과의 조화를 발견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3부 ‘한국의 산수지락’에서는 국가유산청이 보유한 고화질 영상을 통해 광한루원을 비롯한 총 9개소의 한국 전통정원의 빼어난 경관을 소개하며, 한국을 직접 방문할 기회가 적은 영국 국민들에게 우리 전통정원의 아름다움을 체감하도록 돕는다. 마지막 4부 ‘두 정원의 사이(Between Two Gardens)’는 한국 정원 미학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미술과의 융합 영상, 한국 다도 철학을 담은 도서, 그리고 한국의 다도 문화를 재현한 ‘행다(行茶)’ 영상을 통해 한국과 영국의 정원, 다도와 관련된 문학 및 시각 예술 작품들을 폭넓게 선보인다.
개막식에는 허민 국가유산청장의 축하 영상과 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가든 뮤지엄, 서펜타인 갤러리, 영국 도서관, SOAS 런던 대학 등 다양한 현지 기관의 전문가 및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높은 관심을 보였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축하 영상을 통해 “이번 전시가 한국 전통정원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영국 사회에 널리 알리고, 양국 정원문화가 지닌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여 상호 간의 이해와 공감을 깊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통 조경의 보존, 관리, 활용을 총괄하는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국내외에 한국 전통정원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알리는 적극적인 행정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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