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의 오래된 오명인 ‘산재왕국’이라는 수식어를 벗어던지고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 내년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2조 723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며, 이는 단순한 지원 확대를 넘어 취약 사업장과 노동자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이번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이재명 대통령의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범부처 종합대책 마련 지시에 따라 시작되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현장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마련된 이번 대책은 기존의 노동부 중심 대책과 달리, 사고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전 부처가 협업하는 과제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가장 주목할 점은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 강화다. 특히 10인 미만 사업장과 50억 미만 건설 현장의 경우, 추락, 끼임, 부딪힘과 같은 주요 사고 예방을 위한 설비 및 품목 지원이 433억 원으로 대폭 확대된다. 또한,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 역시 370억 원으로 늘어나 최신 기술을 활용한 안전 관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더 나아가, 소규모 사업장이 밀집한 지역 산업단지에서는 공동안전관리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자부담률을 낮추는 방안도 추진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산업안전 분야에 도입·확산시키는 작업도 병행된다.
외국인 노동자와 퀵서비스 기사와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사고사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도 심각하게 다루어진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의 사망자가 전체의 40%를 차지한다는 점은 고령 친화적 작업 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외국인 노동자 사망 사고 발생 시 고용 제한 기간이 3년으로 확대되며, 역량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외국인 안전 리더로 지정하여 안전 교육 및 노하우 전수에 참여시킨다. 배달 종사자에 대한 유상운송보험 가입 및 안전 교육 의무화도 강화된다. 고령 노동자에게 친화적인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2026년에는 30억 원의 예산이 지원될 계획이다.
노동자의 안전 권리 보장 또한 이번 대책의 핵심 축이다. 사업장 안전 등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경우, 원·하청 노사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하여 자체 안전 규범 수립 및 이행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다.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작업 중지 또는 시정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신설되며, 작업 중지권 행사 요건은 완화될 예정이다. 또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재해 조사 보고서 공개와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의 안전보건공시제가 도입된다.
안전 의식 확산을 위한 교육도 확대된다. 생명 안전 인지도 및 감수성 제고를 위해 공공 부문부터 교육 과정을 개설·운영하며, 관련 업무 담당자는 교육 이수가 의무화된다. 외국인을 위한 모국어 및 쉬운 한국어 기반 기초 안전 교육 온라인 과정도 운영되며, 직업계고에는 ‘찾아가는 안전 교육’ 등이 실시된다.
정부는 안전 예방을 촉진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 도입에도 나선다. 연간 3명 이상의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 법인에 대해 영업이익의 3%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영업 정지 요청 요건에 ‘연간 다수 사망’을 추가하여 경제적 제재의 실효성을 높인다. 또한, 중대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기업은 공공 입찰 참가를 제한하는 요건도 확대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은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라며, “산재 예방의 주체로서 노사정이 함께 노력하는 한편, 안전 관리에 대해 공공 기관이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산재왕국’이라는 오래된 오명을 벗고 모든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안전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