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된 대형 맹금류 검독수리의 번식 둥지가 77년 만에 제주도에서 확인되었다. 이는 과거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검독수리의 생태와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서식지 보전 및 중장기적인 보호 대책 마련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안겨준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최근 제주도 한라산 북쪽 절벽에서 검독수리 번식 둥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견은 지난해 7월 한라산 인근에서 구조된 어린 검독수리 한 마리의 사건과 지역 주민들의 목격담을 토대로 시작된 조사에서 비롯되었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의 협력을 통해 올해 4월부터 최근까지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지회 회원들과 함께 검독수리 서식지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한라산 북쪽 지대의 약 90m 높이 절벽에서 지름 약 2m, 높이 약 1.5m로 추정되는 거대한 검독수리 둥지가 발견되었다. 연구진은 올해 5월, 이 둥지에서 암수 한 쌍과 어린 새끼 한 마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망원카메라로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둥지는 마른 나뭇가지를 쌓아 올리고 안쪽에는 마른 풀잎과 푸른 솔가지로 채워져 있었다. 연구진은 둥지에 서식하던 검독수리들이 모두 최소 6년생 이상의 성조로 추정했으며, 어린 새끼는 외형만으로 성별 구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7월 조사에서는 이들이 둥지를 떠나 이소했음을 확인했으나, 번식지를 쉽게 옮기지 않는 검독수리의 특성을 고려할 때 내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번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검독수리 번식 둥지와 번식 쌍, 그리고 새끼가 함께 확인된 것은 1948년 경기도 예봉산에서 미군 장교 로이드 레이몬드 울프(Lloyd Raymond Wolfe)가 한국인 가이드 김훈석 씨와 함께 둥지를 발견한 이후 7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울프 장교는 당시 경기도 천마산에서도 새끼가 있는 둥지를 발견했으며, 이러한 관찰 기록은 1950년 10월 미국의 저명한 조류 학술지 ‘디 오크(The Auk)’에 게재되기도 했다.
수리목 수리과에 속하는 검독수리는 날개 폭이 2m가 넘는 대형 맹금류로, 국내에서는 주로 겨울철에 소수의 개체만이 전국 산야 및 습지 주변에서 관찰되어 왔다. 이들은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북반구에 분포하며 포유류와 조류를 사냥하고 동물 사체도 먹는다. 1~2월에 1~4개의 알을 낳아 44~45일간 포란하고, 부화한 새끼를 70~102일 동안 육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생태원은 이번 검독수리 번식 둥지 발견을 계기로 제주특별자치도 등 유관 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서식지 보전을 추진하고, 번식 상황을 지속적으로 관측하며 번식 개체의 기원에 대한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창석 국립생태원장은 “이번 발견은 역사적, 학술적으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라며,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 보전과 중장기적인 보호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