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수호하다 25세 젊은 나이로 산화한 고 조종호 이등상사(현 계급 중사)의 유해가 72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해 11월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7사단 소속 고 조종호 이등상사로 최종 확인했다. 이는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 시작 이래 260번째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국군 전사자의 쾌거이다.
이번 고인의 신원 확인은 주변의 작은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은 제보자와 국유단 전문 조사·발굴팀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평생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자 했던 아들의 깊은 효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인의 아들인 조정원 씨(76세)는 지난 2009년 4월,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영동군보건소를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당시 생존해 계셨던 어머니 권막분 여사는 “네 아버지를 찾으면 함께 현충원에 묻힐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하셨다. 당시에는 영정이나 위패로 봉안된 전사자의 배우자가 위패로도 함께 봉안될 수 없었기에,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 2017년 국립묘지법 개정 덕분에 2019년 작고하신 권막분 여사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될 수 있었으며, 이제 고인의 유해와 합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어머니의 오랜 소원을 마침내 이루어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고인은 1950년 12월 대구 1훈련소로 입대하여 국군 제7사단에 배치된 후, 3년여 동안 수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헤쳐 나왔으나, 1953년 7월 25일, 정전협정을 불과 이틀 앞둔 날 전사했다. 입대 후 3년간 강원도 평창군 하진부리부근 전투(1951. 3. 6.∼13.), 강원도 인제군 현리전투(1951. 5. 16.∼22.),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전투(1951. 9. 24.∼27.), 크리스마스고지 쟁탈전(1952. 10. 6.∼14.), 선우고지 전초진지 쟁탈전(1953. 6. 25.∼30.) 등 수많은 격전지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역전의 용사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투에서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4년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정전협정을 이틀 앞두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애타게 기다리던 고인은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1953. 7. 15.∼23.)’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9월 23일 화요일, 대전광역시 중구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현재 투병 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정원 씨는 행사에 반드시 참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어머니를 현충원에 모신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평생 소원대로 이제 아버지 유해를 찾아 현충원에 합장할 수 있게 되었다”며 국가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이날 행사에서 조해학 국유단장 직무대리(육군 중령)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상세히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6·25 전사자(호국영웅)의 신원 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이 절실하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하다. 제공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6·25전쟁 발발 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유가족을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국유단은 전국 각지의 유가족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유전자 시료 채취 방문이 어려운 경우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연락하면 직접 찾아가 시료를 채취할 예정이다. 당신 역시 ‘유(遺)가족’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