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업재해 사고사망률은 1995년 10만명당 34.1명에서 2024년 3.9명으로 크게 감소했지만, 독일, 일본, 영국 등 산업안전 선진국들의 1명 전후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2025년 9월 1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한 일터: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산재 예방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했다.
한국의 산재 사고사망 현황을 살펴보면, 건설업과 제조업에 사고 사망자가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사업장에서 사고사망이 빈번하며, 2023년 기준 전체 사고사망자 중 55세 이상 고령근로자가 64.2%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 증가에 따라 외국인 사고사망자 비중 역시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또한, 대기업의 위험이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원하청 관계의 문제도 산재 사고사망의 주요 특징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건설업과 제조업 중심의 중소사업장 산재 사고사망 감소가 산재 예방 대책의 핵심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중소사업장의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예산과 인력 부족, 잦은 노동자 이직 등의 문제로 정부 지원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았다. 2023년 기준 290만여 개에 달하는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에 대한 지원 비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며, 대상 기업을 늘릴 경우 사업의 질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정부 지원 안전보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 부족을 호소하거나, 설령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정부의 지원과 간섭을 원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안전보건 전문가와 정부 주도로 산재예방 사업이 진행되면서, 노동자와 사업주는 더 이상 산재예방 사업의 ‘주체’가 아닌 제도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사 양측 모두 산재예방 활동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기업은 산재예방 비용을 불가피한 지출로 인식하여 최소화하려 했고, 노동자들은 위험한 업무 수행 시 안전수칙 미준수를 일종의 ‘숙련’으로 여기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는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수준 향상이라는 분명한 목표 앞에 놓인 만만치 않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그동안 논의된 방대한 내용을 집약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중소사업장 산재예방 사업의 주체에 지자체를 포함시킨 점과, 예방 주체로서 노동자에게 알 권리, 참여 권리, 피할 권리 등 ‘노동안전 3권’을 부여한 것이다. 또한, 산재 발생 사업장에 대한 경제적 제재 강화 방안도 포함되었다. 중소사업장을 개별적으로 접근하기보다 특성에 맞춰 그룹화하여 지원하는 방식은 더욱 실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노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며 이들을 산업안전보건의 실질적인 ‘주체’로 규정하고, 산재예방 노력을 적극 독려한다는 점이다. 특히, 각 기업별로 운영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원하청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도록 한 중소사업장 대책은 기존의 개별 기업 단위에서 사업장 단위로의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더불어 노동계의 지속적인 요구 사항이었던 작업중지권 확대를 ‘피할 권리’로 명확히 정의하고 보장을 강화한 점도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중소사업장에 대한 스마트 안전장비 및 AI 기술 지원을 통해 기업의 자체적인 안전 역량 강화도 도모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제도는 선진국 수준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작동성과 관리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아무리 훌륭한 산재예방 제도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당사자인 노사가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이번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노사가 산재예방 활동의 진정한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앞으로 노사 공동의 산재예방 노력이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지역 및 업종 차원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세밀한 관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