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발표 이후 청년 일자리 문제가 연일 언론을 뒤덮고 있다. ‘청년 고용률이 16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거나 ‘단군 이래 최고 스펙들이 쉬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구체적인 이유 없이 그냥 쉬는 ‘쉬었음’ 청년이 2020년부터 40만 명대를 지속하며 노무현 정권 첫해인 2003년 대비 20만 명 이상 증가했다. 이들은 최저시급 이하 급여, 열악한 근무 환경, 사적 심부름 강요,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견디지 못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경험 있는 노동력이다. ‘쉬었음’ 청년들이 희망하는 일자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연봉 2823만 원, 통근시간 63분 이내, 추가 근무 제한, 개인 성장 기회 제공 등 ‘상식적’ 일자리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상식적’ 일자리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의 일자리 상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 증가와 청년 일자리 감소로 요약된다. 8월 기준으로 청년 일자리는 1991~2025년 사이에 약 200만 개가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368만 개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청년 일자리 대 65세 이상 일자리 비율은 1991년 8.3배에서 올해 0.8배로 감소하며, 지난해부터는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했다.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한국의 청년 일자리 부족은 두드러진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은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의 59%도 채 되지 않는데, 이는 우리와 달리 청년 일자리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문제는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산업 자체의 문제이다. 특히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는 신산업 창출의 실패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은 제조업인데, 1991년 8월 전체 일자리의 약 27%를 차지했던 제조업 일자리가 올해 8월에는 15%로 줄었다. 이는 일본이 약 50년에 걸쳐 진행한 탈공업화가 한국에서는 33년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한국 제조업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조업 생태계에서 생산 부문에만 특화되어 있으며, 제품 설계나 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사업서비스는 해외에 의존하는 ‘자기완결성 결여’ 문제를 안고 있다. 이로 인해 줄어든 제조업 일자리를 대체한 것은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인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다. 1991년 92% 이상이었던 자영업자 평균 소득 대 급여생활자 평균 소득 비중은 지난해 35% 미만으로 하락하며 한국형 ‘소득의 초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그리고 고령화로 이어졌고, 자영업자의 고령화 역시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1차 베이비붐 세대가 60세가 된 2015년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25%에서 지난해 37%로 급증했다. 반면, 신산업 육성 실패는 청년 일자리 감소로 직결되었다. 25~34세 취업자 규모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월 606만 명에서 올해 8월 535만 명으로 70만 명 이상 감소했으며, 30~34세 일자리 역시 1991년 310만 명에서 2025년 294만 명으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65세 이상 취업자는 339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고령층은 은퇴 후 레드오션인 자영업이나 정부 지원 일자리에 의존하고, 청년 일자리는 줄어드는 현상은 한국 산업 생태계의 심각한 병폐를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기술 혁명, 즉 디지털 생태계, 데이터 혁명, AI 혁명 흐름에 한국도 IT 강국 및 신성장 동력 육성으로 대응했지만,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는 실패했다.
AI 대전환이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려면 지난 30년간의 산업 정책에 대한 자기 비판이 필요하다.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 생태계의 일부를 맡았던 ‘식민지형 산업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AI 3대 강국은 선진국형 디지털 생태계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은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 인프라가 취약하고,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을 배출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 현 교육 시스템에서는 과제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과 협력하여 새로운 답을 만들어내는 인재 양성이 어렵다. 이는 한국이 플랫폼 사업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와도 연결된다. ‘위계와 경쟁’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은 ‘분산, 이익 공유, 협업’이라는 플랫폼 사업 모델 문화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데이터 혁명’ 및 ‘AI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며, 삼성전자와 같은 대표 기업조차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에서도 AI 대전환에 적응하지 못하며 위상이 하락했다.
AI 기반 산업체계 대전환에서 인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AI 모델을 활용해 미국이나 중국에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거리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인재의 몫이다. 따라서 ‘AI 3대 강국’은 인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과 ‘쉬었음’ 청년에 대한 생활비 지원을 ‘AI 전사 육성’ 및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실패한 산업 정책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이나 기득권과의 ‘결별’이 필수적이다. ‘AI 전사’는 획일주의와 극한 경쟁 환경에서 양산되는 모노칼라 인재와는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국이 근대 산업 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 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과 사회 혁신 덕분이었다.
새로운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혁명 없이는 성공적인 AI 대전환이 어렵다는 사실은 AI 인프라와 모델 강국임에도 20%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는 중국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AI 전사들의 새로운 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 결별해야 한다. 더불어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쉬었음’ 청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기적 사회소득 제도화가 시급하다. 사회소득의 제도화야말로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시드머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