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의 세계적 인기가 한국 전통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서울 북촌의 전통주갤러리는 K-문화 체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 전통주의 다채로운 매력을 알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설립한 이 공간은 매달 선정되는 ‘이달의 시음주’를 통해 탁주, 약주, 증류주, 과실주 등 총 5가지 종류의 전통주를 소개하고 시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최근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 방문객의 비율이 40%에 달할 정도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는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막걸리와 파전 조합을 넘어, 떡볶이나 불고기 등 자신이 좋아하는 K-푸드와 어울리는 술을 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니즈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전통주갤러리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하루 7회 운영되는 시음 프로그램 중 2회를 영어로 진행하며, 글로벌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을 통한 예약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한국 전통주는 막걸리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넘어선다. 쌀, 밀, 보리 등의 원료를 발효시켜 술덧을 만들고, 이를 어떻게 거르느냐에 따라 탁주, 약주, 증류주 등으로 나뉜다. 맑은 술을 떠낸 것이 청주(또는 약주), 남은 지게미를 거른 것이 탁주(막걸리)다. 청주를 다시 증류하여 얻는 것이 증류주다. 특히 약주는 15~16도의 비교적 높은 도수와 쌀에서 우러나오는 구수함, 농축된 풍미로 한식과의 뛰어난 궁합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국산 포도, 딸기, 키위 등 다양한 과일로 만든 과실주와, 물에 주정과 첨가물을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곡물을 발효시켜 숙성한 증류식 소주 또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전통주의 스펙트럼 확장은 한국인조차 정확히 알기 어려울 만큼 넓고 다양하다.
이러한 전통주의 다양성과 매력은 수출액 증가라는 구체적인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국내 전통주 제조면허 건수는 2019년 1163건에서 2023년 1812건으로 56% 증가했으며, 전통주 수출액 역시 2019년 1497만 달러에서 2023년 2400만 달러로 60% 늘었다. 정부는 2027년까지 전통주 수출액을 5000만 달러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전통주가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실질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통주는 외교 무대에서도 한국의 멋과 문화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식량안보 장관회의 환영 만찬에서는 소주, 탁주, 과실주로 만든 전통주 칵테일이 선보여 200여 명의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대통령상을 수상한 ‘천비향 약주 15도’는 참가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또한,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진행된 ‘미리 만나보는 정상 만찬주’ 행사에서는 350년 역사의 ‘교동법주’, 머루로 만든 ‘크라테 미디엄 드라이’, 100일 숙성 ‘대몽재 1779’, 500년 전통의 ‘안동소주’ 등 지역 특색과 역사를 담은 전통주들이 소개되었다. 참가자들은 한국 술의 독특한 맛과 향, 그리고 개성과 스토리에 매료되었다는 찬사를 보냈다.
한편, 전통주의 품질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는 국내 유일의 정부 주관 대회로, 2025년에는 전국 246개 양조장에서 402개 제품이 출품되는 등 규모가 확대되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수상작들은 상금과 함께 다양한 프로모션 혜택을 받아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K-전통주가 가진 잠재력을 현실화하고,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술 문화 속에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