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의 급성장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전기차 업계의 ‘게임체인저’로 주목받았던 전고체 배터리 기술의 상용화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애초 2030년께 상용화가 예상되었던 전고체 배터리가 2027~2028년경에는 로봇 산업에 먼저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이는 인공지능(AI) 기술 발달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속도가 가속화되고 산업 현장에서의 로봇 활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추세와 맞물려 미래 배터리 기술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배터리 업계와 증권가는 올해를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의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기존의 연구·개발 중심 단계에서 벗어나 실제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미션 드리븐’ 산업으로 로봇 산업이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로도 뒷받침된다. 프레지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38억4000만달러 규모인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2년 뒤인 2026년에는 68억1000만달러로 약 두 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2032년에는 286억달러 규모로 현재보다 약 7.5배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로봇 산업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의 가장 큰 기술적 난관으로 꼽히는 배터리 문제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기 위해서는 낮은 용량과 짧은 가동 시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가장 유력한 해법으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전기차 배터리에서 에너지 밀도가 높아 사용 시간이 긴 삼원계 NCM(니켈·코발트·망간) 계열 배터리의 장점과 높은 안정성 및 가격 경쟁력을 갖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장점을 모두 갖춘 차세대 기술이다. NCM 배터리는 안정성 문제가, LFP 배터리는 낮은 에너지 밀도가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으나, 전고체 배터리는 NCM 배터리보다 더 높은 에너지 밀도를 확보하면서도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여 누액이나 발화 위험을 줄여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은 크기가 작고 배터리 탑재 공간이 협소하며 센서, 모터 등 복잡한 제어 장치가 밀집해 있는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정교한 움직임과 고해상도 시각 처리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작으면서도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배터리 설계가 필수적이다. 로봇의 원활한 구동을 위해서는 무게 또한 가벼워야 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러한 요구사항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동일한 탑재량으로 사용 시간을 50% 이상 늘릴 수 있으며, 고체 전해질 특성상 안전장치를 간소화하여 배터리 시스템의 총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 투자를 확대하며 기술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적합한 고출력 셀 개발과 샘플 공급 논의가 활발하다고 밝혔으며, 삼성SDI는 현대차그룹과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SK온은 대전 미래기술원에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준공하며 상용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CATL 역시 인허범용로봇과 협력하여 휴머노이드 전용 배터리 개발에 나섰으며, 일본의 도요타와 파나소닉은 반도체·센서 통합형 배터리 설계를 연구하며 로봇에 최적화된 배터리 플랫폼 개발에 주력하는 등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도 전고체 배터리 기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가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전략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으며, 향후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