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정부 예산안은 당면한 경기 둔화와 인구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방향 전환형 확장’ 재정 기조를 명확히 하고 있다. 총지출 728조 원으로 전년 대비 8.1% 증가하며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일시적 경기 부양책이 아닌,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정부는 고성과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고 저성과·중복 사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가 직면한 국가채무 1415조 원, GDP 대비 51.6% 상승 상황은 단순한 재정 악화로 치부하기 어렵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 수요 증가, 산업구조 전환, 기후위기 대응 등 새로운 국가적 과제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안정적인 재정 확대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민간의 자생적 회복만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지속 성장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정부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예산안의 무게중심은 명확하게 인공지능(AI) 및 신산업 분야에 맞춰져 있다. AI 3강 도약을 위해 고성능 GPU 1만 5000장을 추가 확보하고, ‘AX 스프린트 300’ 프로그램을 통해 300개의 생활 밀착형 제품에 AI를 신속히 이식한다. AI 예산은 3조 3000억 원에서 10조 1000억 원으로 3배 이상 확대되었으며, R&D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 3000억 원으로 19.3% 증액되었다. ‘ABCDEF(인공지능·바이오·문화콘텐츠·방위산업·에너지·첨단제조업)’ 분야 핵심 기술 고도화와 5년간 100조 원 이상 투입될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유망 기업의 스케일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모두의 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사회안전망 또한 촘촘하게 엮인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8세로 상향하고, 청년미래적금 신설로 납입액을 매칭 지원한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24만 명에게 월 15만 원을 지급하고, 지역거점 국립대 육성을 위한 예산은 40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대폭 확대되었다. 또한 지방 의료 및 교통 인프라 보강, 재난대응, 첨단국방, 한반도 평화 인프라 투자도 확대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RE100 산단과 분산형 전력망을 구축하고, 전기차 전환 지원금 및 녹색금융을 늘려 민간의 전환 비용 부담을 완화한다. 문화·관광·콘텐츠 분야 투자와 지역관광 활성화, 지역사랑상품권 등 민생 보강 장치도 병행된다.
확장 재정의 재정 건전성 우려를 줄이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단행된다. 연례성 행사·홍보성 경비와 같은 경상비를 줄이고, 중복·저성과 사업 1300여 개를 정비하며, 의무지출 제도의 틈새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약 27조 원을 절감하여 핵심 과제에 재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줄일 것은 줄이고, 키울 것은 키우는’ 체질 개선 없이는 확장 재정이 곧바로 건전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선택은 불가피하다.
다만, 총수입 증가율이 총지출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당분간 GDP 대비 4% 안팎에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와 환율 변동성은 국채 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따라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입 기반 확충과 지출 효율화라는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세원 포착과 과세 형평성 제고를 위한 세제 정비, 사회보험 재정 구조 개선, 성과 중심의 예산 평가 제도화 노력이 뒷받침될 때 ‘확장 후 정상화’ 시나리오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AI 전환과 R&D 확대가 생산성 개선으로 빠르게 이어지고, 수출·투자가 회복되어 세입이 견조해진다면 채무 비율 상승은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유지될 수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사업 우선순위, 배분의 정밀성, 지역·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더욱 엄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2026년 예산안은 일시적 경기 대응을 넘어선 ‘방향 전환형 확장’으로, 성장의 엔진을 교체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핵심은 속도와 질의 균형이다. 구조조정을 통한 누수 방지, 미래 투자에서의 확실한 성과 창출,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총지출 증가 속도를 다시 낮추는 세 단계를 일관되게 실행할 때, 확장 재정은 재정 불안을 키우는 비용이 아닌 체질 개선을 위한 투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빚을 내서라도’가 아닌, ‘빚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장의 조건을 바꾸자는 제안 위에 2026년 예산안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