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 굽이진 길을 따라 철조망과 경비초소, 경고문들을 지나쳐 닿은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휴전국’이라는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곳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본 북한 개성의 일상은 분단의 아픔을 생생히 느끼게 했으며, 통일이 더 이상 나와 무관한 먼 이야기가 아님을 실감하게 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단순한 나들이를 넘어 ‘안보 견학’의 장으로서 교육적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1층과 2층에 마련된 전시실은 분단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현재를 성찰하며 통일의 미래를 조망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1년에 2~3차례 열리는 특별기획전시는 다양한 주제로 관람객들의 흥미를 더한다. 이날 방문 시에는 2층 ‘그리운 내 고향’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실향민들이 그린 북한 땅의 풍경 5,000여 점은 섬세한 묘사 속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3층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는 DMZ 철조망을 피아노 현으로 재활용한 ‘통일의 피아노’가 분단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 곳곳에는 분단의 역사, 6.25 전쟁 자료, 남북 교류 관련 전시가 소개되었고, 영상실에서는 통일 교육 관련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야외 전망대에 올라서면 개성 시내와 북한 마을의 논밭, 건물이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관찰되었다.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개성 일대는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가까운 거리였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북한 주민의 일상을 엿보며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표현을 절감하게 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개성 시내, 개풍군 마을 일대,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까지 관찰할 수 있어, 북한이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 중 하나로 꼽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과 연간 약 100만 명의 방문객 수는 이곳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안보 견학지임을 증명한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단순한 나들이 장소를 넘어, 분단의 현실과 통일의 가능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이러한 현장의 생생함은 최근 발표된 2026년 통일부 예산안에서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지난해보다 약 20% 이상 증액된 1조 2,378억 원 규모의 예산안은 통일 문제가 더 이상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국민 개개인의 삶과 연결된 구체적인 정책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인도적 지원, 경제 협력 사업, 문화 교류 및 국민 공감 프로젝트 등은 확대된 남북협력기금 1조 25억 원을 통해 구체화될 전망이다. 새롭게 포함된 체험 사업, 민간 통일운동, 통일 문화 교육 등은 국민들이 통일 관련 정책을 ‘보고, 느끼는’ 경험의 기회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6년 통일부 예산은 크게 네 가지 분야에 배분된다. 약 6,810억 원이 책정된 ‘인도적 문제 해결’ 분야는 이산가족 지원과 구호 활동에 집중된다. ‘경제협력 기반 조성’ 분야는 교류 협력 보험, 경제협력 대출 등을 포함하여 남북 교류 재개 시 활용될 토대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회문화 교류’ 분야는 문화·체육 교류, 민간 교류 사업 등을 소규모로 반영했으며, ‘국민 공감 확대’ 분야에는 통일 문화 체험, 민간단체 지원,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 등이 포함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예산 항목이 단순한 정책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오두산 통일전망대나 DMZ 탐방과 같은 현장 체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부 예산은 국민이 통일 문제를 ‘체험’할 기회를 넓히는 자원으로 작동할 수 있다. 더불어 오두산 통일전망대 이용객이 DMZ 생생누리를 방문할 경우 입장료를 반액 할인해주는 ‘DMZ 연계할인’은 이러한 체험 기회를 더욱 확대하는 정책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마주한 북한 너머의 풍경은 통일·안보 정책이 단순한 정부 문서 속 숫자에 그치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2026년 통일부 예산안의 증액된 규모와 신규 사업들은 분명 기대를 갖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산이 책상 위에서만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산 집행의 가능성, 남북 관계의 흐름, 주민과 민간단체의 참여, 지역 인프라 정비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만 예산은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으로 존재할 수 있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청명한 하늘과 함께 풍경을 바라보며 통일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했던 오두산 통일전망대처럼, 눈앞의 풍경이 통일을 향한 열망을 키우는 공간이 되기를, 그리고 정부 예산이 이러한 공간들을 지원하는 강력한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