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구천 암각화가 지난 반세기 동안 겪어온 수몰 위협은 그 가치를 제대로 보존하고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고래의 유영이 생생하게 새겨진 바위가 댐 수위 아래 잠겨 박락이 떨어져 나가고, 어설픈 탁본으로 인해 원본이 상실되는 일들이 발생해왔다. 최근 몇 년간 잦은 가뭄으로 암각화가 비교적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점증하는 기후변화와 댐 운영상의 변수들 앞에서 ‘반구천’이라는 이름이 언제든 ‘반수천’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물속에 잠긴 문화유산은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잃을 수 있으며, 등재 이후의 보호 및 관리 계획이 부실할 경우 유네스코는 등재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점은 ‘기적의 현장’을 ‘수몰의 현장’으로 되돌리는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는 단순한 보존을 넘어선 ‘솔루션’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 계기로 울산시는 ‘고래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래 축제 개최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이제는 암각화를 체험형 테마공원, 탐방로, 교육 프로그램, 워케이션 공간까지 아우르는 생동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AI 기반의 스마트 유산관리 시스템 구축과 암각화 세계센터 건립 등 미래 지향적인 전략도 병행될 예정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얻을 수 있는 보존 사례는 이러한 노력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두 유적 모두 관광객 증가로 인한 훼손 문제를 겪은 후, 일반 공개를 중단하고 정밀한 복제품이나 재현 동굴을 설치하여 ‘간접 관람’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원본의 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유산의 공개와 보존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현대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하는 책임감을 강조한다.
반구천 암각화는 6000여 년 전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성, 자연과의 교감이 바위 위에 새겨진 ‘역사의 벽화’로서, 인류와 함께 나눌 이야기로 승화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1970년 12월 24일 최초 발견된 천전리 암각화와 1971년 12월 25일 발견된 대곡리 암각화는 각각 청동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반구천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를 “선사 시대부터 600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자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며 ‘사실성, 예술성, 창의성’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러한 평가와 함께, 문화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간의 언어’로서, AI, 3D 스캔, 디지털 프린트 등 현대 기술을 활용하여 원본의 ‘아우라’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안전하게 보존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