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한류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한국 사회 내부의 차별 문제 해결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BTS,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기존의 상징적인 성공을 넘어 K팝 그룹들의 기록적인 빌보드 석권과 연간 2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인 관광객 유입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블랙핑크, 세븐틴, NCT와 같은 그룹들이 BTS의 앨범 판매 기록을 넘어서고, 특히 스트레이 키즈는 7개 앨범 연속 빌보드 Top 200 1위라는 전무후무한 신기록을 세우며 K팝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의 글로벌 성공은 영어 소통 능력과 군 복무 문제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멤버 구성이라는 점에서 향후 K팝 그룹들의 안정적인 성공을 위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한류 열풍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이어져, 한국 관광 산업의 새로운 기록 경신을 예고하고 있다. 비록 일본, 중국, 프랑스 등 주요 관광 대국에 비하면 아직 최고 수준의 입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한류의 강세는 한국 관광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더욱이 관광객 증가는 한국을 미디어를 넘어 실제 거리에서 직접 경험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통해 한류를 접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한류의 긍정적인 측면 이면에는 심각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수많은 관광 유튜버들이 한국의 매력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동시에, 도심 곳곳에서 벌어지는 과격한 구호의 혐오 시위 역시 고스란히 전파되고 있다. 특히 명동, 광화문, 건대 등지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혐중 시위는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이를 접하는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한국의 이면에 대한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이처럼 한국 미디어 콘텐츠가 글로벌 대중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콘텐츠 내부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내재된 인종주의적 감수성이나 차별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들에 대해 세계적인 한류 애호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K팝 팬덤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새로운 남성성과 여성성을 포함한 젠더 표현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한류 콘텐츠는 기존의 획일적인 남성성에 대한 대안으로 부드러운 남성성을 제시하며, 아이돌 문화는 세계 청년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젠더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케이뷰티와 관련된 백색주의 문제 역시 아이돌의 피부 표현을 둘러싼 인종 및 피부색주의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곤 한다. K팝은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가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성 정체성과 피부색으로 나타나는 인종 문제가 교차하며 올바름의 경계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하는, 소란스럽지만 건강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한류 현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한류 소비자들 역시 한류 콘텐츠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도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한국의 작품들은 선진국 시청자들에게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식민 경험, 빈곤, 전쟁, 분단, 독재 등 온갖 어려움을 겪고도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룬 한국이 극복의 모델이 된다. 이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는 돌봄, 연대, 공동체의 선을 위한 개인의 태도 등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겠지만,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이다. 한류가 만들어내는 매력은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신비로우면서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과정은 항상 위태로움을 동반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 내부의 인종주의와 성차별 문제다. <오징어게임>에서의 파키스탄 참가자나 <청년경찰>의 연변 범죄자 집단 묘사는 외국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재현을 통해 드러나며, 이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 문제와 직결된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과도한 미적 기준이나 드라마 속 여성 및 성소수자 재현에 대한 팬들의 논쟁은 현실 속 미투 운동 및 퀴어 퍼레이드 논란과 맞닿아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과격한 혐오 시위는 미디어 문화를 통해 한류를 접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차별적 현실을 극명하게 인지하는 순간이다.
필자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한류는 ‘밑으로부터의 세계화’다. 이는 힘있는 엘리트 집단에 의해 확산된 문화가 아니라, 힘없는 일반 수용자들이 만들어낸 버텀업 문화 현상이다. 따라서 더욱 선한 영향력, 배려와 연대의 태도, 돌봄과 겸손의 제스처, 그리고 크고 작은 공동체의 가치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K팝 그룹들이 팬들과 맺는 관계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가치 역시 이러한 맥락과 상통한다. 한류는 일세계가 아닌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만들어낸 비주류의 아름다움이며, 그렇기에 차별과 배제의 담론이야말로 한류의 최대의 적이다.
만약 한류의 미래에 대해 묻는다면, 혹자들이 우려하는 시장 축소에서 위기가 올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차별이라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때 한류의 위기는 도래할 것이다. 한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지난 십수 년간 제자리걸음인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