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 경제는 0%대 성장률 전망이 이어지며 녹록지 않은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유지했으며, 이는 금융위기 당시와 맞먹는 수치다. 소비쿠폰 지급 등 소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계 소비 부진이 지속되고 건설 투자 역시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내수 취약성은 우리 경제를 수출 시장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었고, 세계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 경제는 고도 성장이 둔화된 이후,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은 고용 및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등 충격의 비용을 가계에 전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깊은 상처를 입었고, 경제에서 가계 소비의 역할은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 5년간 가계 당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실질 가계소비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4.8%와 7.1%였으나, 외환위기 이후 27년간은 각각 0.7%와 0.8%로 급감하며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가계 소득과 소비가 억압된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가계 부채가 동원되었고, 이는 소비와 성장 둔화를 가속화하며 악순환을 만들었다. 지난 30년간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1139조 원 증가했지만, 가계의 부동산 자산은 소득 증가분의 7.4배가 넘는 8428조 원이 증가하며 자산 불평등 심화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더욱이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생계 위기에 직면한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더 이상 가계 부채를 통한 부동산 투기에 나서기 어려워졌다. 이는 2021년 4분기부터 가계 부채 감소세 전환, 지방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침체, 건설 투자 성장 기여도 3년 6개월 연속 마이너스 기록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가계 소비의 구조적 취약성과 연결된 건설 투자 침체의 근본 원인은 가계 소득의 억압에 있으며, 이는 가계 소득 강화가 불가피함을 시사한다.
민생 회복을 위한 소비 쿠폰 지급은 단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늪에 빠진 경제를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기에 반복적인 지급은 어렵다. 따라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 소득 지원 방안을 도입하고, 이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기적인 사회 소득은 ‘사회 임금’ 또는 ‘사회 소득’으로 불리며,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고 사회 유지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된다. 개인이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시장 소득’과 달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생산의 결과물 중 사회 몫으로 떼어 분배되는 사회 소득의 결정은 정치와 민주주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 기준에서 사회 소득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인 사회 지출 규모를 비교해보면, 2024년 기준 OECD 평균(21.229%)에 비해 우리나라(15.326%)는 하위 그룹에 속한다. 이는 GDP 대비 5.903% 포인트 부족한 수치이며, 2024년 GDP(2557조 원)를 적용하면 151조 원에 해당한다. 이를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면 OECD 평균 대비 약 300만 원씩 적게 받는 셈이며,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1200만 원, 월 1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가계 소비 지출의 구조적 취약성은 사회 소득의 절대적 과소, 시장 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 그리고 시장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비롯된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창출 활동자의 평균 월 수입은 282만 원이었으나, 하위 41%는 최저임금 기준 월수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수 국민이 소득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주며, ‘을’ 간의 갈등이 일상화된 배경이기도 하다.
정기적인 사회 소득 도입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회 소득의 일정 부분을 지역 화폐로 지급함으로써 소상공인의 매출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기적인 사회 소득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현재 상황에서 추가 세금 도입은 어렵다. 한국의 최고 개인소득세율은 OECD 평균보다 낮지 않지만,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은 낮은 편이다. 이는 표면상 소득세율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며, 수많은 공제 혜택으로 인해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410조 원의 소득에 공제 혜택이 적용되어 약 101조 원의 세금이 감면되었다.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은 반면, 하위 30%는 421만 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세금 공제액은 11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 공제 방식을 모두 폐지하고 확보한 세금을 인적 공제만을 기준으로 전체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 지급이 가능하다. 이는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90% 이상의 국민이 순혜택을 보고, 소득이 낮을수록 순혜택이 증가하여 재분배 효과 또한 크다.
이처럼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수술하여 정기적인 사회 소득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소득과 소비 지출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소득 강화는 기본 금융 도입과 결합될 경우, AI 대전환에 따른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