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에서 시작된 소창 직물 산업은 한때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으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33년 ‘조양방직’의 설립을 시작으로 1970년대까지 60개가 넘는 방직공장이 성행했던 강화는 이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잊혀가는 듯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폐업한 ‘동광직물’을 생활문화센터로, ‘평화직물’ 터를 ‘소창체험관’으로 새롭게 단장하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쇠락했던 산업을 되살리고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과거 강화는 대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직물 도시로 손꼽힐 만큼 직물 산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당시 강화읍 권역에는 60여 개의 공장이 운영되었고, 4,000명에 달하는 직공들이 일하며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면화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소창은 옷감, 행주, 기저귀 등 다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지에서 면화를 수입하여 생산이 이루어졌다. 현재도 6개의 소창 공장이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소창을 직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강화직물의 역사와 문화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는 이러한 강화 직물의 역사를 체감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한편, 강화도는 해안 지역의 풍부한 갯벌과 한강, 임진강이 만나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새우젓 생산지이기도 하다. 특히 강화 새우젓은 짠맛보다는 들큼하면서도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며, 늦가을 김장철이면 새우젓을 사려는 사람들로 섬이 들썩일 정도다. 이러한 새우젓은 강화의 소박한 향토 음식인 ‘젓국갈비’의 주재료로 활용된다. ‘젓국갈비’는 갈비, 호박, 두부, 배추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지만, 새우젓이 주는 독특한 감칠맛과 풍미가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이는 화려한 재료 없이도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내는 강화의 음식 문화를 잘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새우젓은 억척스러운 강화 여인들이 방직물을 팔러 전국을 다니며 쉰밥, 찬밥에 곁들여 먹었던 귀한 찬이기도 했다. 중간 상인 없이 직접 판매하여 좋은 마진을 남겼지만, 먼 길을 떠나 배고픔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그 시절, 새우젓은 그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귀한 음식이자였다. 당시 강화 여인들이 품팔이를 나설 때 앞치마에 싸가던 새우젓과, 어린 동생들의 기저귀를 삶아 키우던 어머니의 모습은 함민복 시인의 시처럼 우리네 인생의 애잔함을 떠올리게 한다. 쇠락한 직물 산업의 부활과 새우젓에 얽힌 삶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강화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깊은 역사와 삶의 향수를 간직한 특별한 공간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