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 경제는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긍정적인 흐름 속에서 경제 심리, 주식시장, 성장률 등이 빠르게 회복하며 위기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침체된 소비를 살리기 위한 중요한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한 새 정부의 지난 2개월간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시장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신호들 속에서도, ‘소비 부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2020년 -2.2%의 성장률은 2009년 금융위기(-2.6%)를 제외하면 1950년 이후 최저치였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구조 계획법(the American Rescue Plan Act)’에 서명하며 2021년 미국 GDP의 8%에 달하는 1.9조 달러의 경기 부양 예산을 요청했다. ‘전례 없는 위기에 대한 전례 없는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된 이 추경안 덕분에, 2021년 2분기부터 미국의 소비지출은 팬데믹 이전의 장기 추세를 초과하며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러한 소비 지출의 회복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임기 중 2000년 이후 역대 정부 중 최고 기록인 연평균 3.6% 성장률을 달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퍼주기’라 비난했지만, 높은 성장률은 정부채무 안정 관리에도 기여했다. 추경 집행 직전 2021년 1분기 GDP 대비 121.4%까지 치솟았던 미국 정부채무는 빠른 경기 회복과 GDP 증가에 힘입어 2023년 1분기 109.5%로 하락했다. 또한, 가계 구제 지원 덕분에 가계부채 역시 2019년 말 74.6%에서 2023년 3월 73.2%로 오히려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소비 부양, 경제 성장, 정부 및 가계 부채 안정이라는 네 마리 토끼를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사뭇 달랐다. 2020년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GDP의 0.7%에 불과한 14.2조 원을 투입했지만, 같은 해 가계 소비지출은 GDP의 3.9% 규모인 79조 3394억 원이나 감소했다. 경기가 회복하는 듯했으나, 2023년에는 소비지출 감소폭이 4.0%까지 확대되었고, 올해 1분기에는 5.5%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가계,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액은 각각 약 2배, 4배, 5배가 증가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올해 1분기 GDP는 지난해 1분기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2020년 수준으로, 실질 소비지출은 2016년 수준으로 후퇴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대응의 차이는 성장률 격차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미국보다 앞섰던 한국의 성장률은 이후 미국에 뒤처졌고, 정부채무는 2019년 말 GDP 대비 35.4%에서 2023년 말 46.9%로 증가했다. 가계부채 역시 2019년 말 89.6%에서 2023년 9월 99.2%까지 급증하며 ‘전례 없는’ 4중고를 겪고 있다.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이 1%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3년간 ‘경제 전염병’ 확산으로 경제 주체들은 자신감을 잃었으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때의 강요된 경제생태계 붕괴보다 더 심각한 ‘자발적’ 경제생태계 붕괴 상황을 초래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출범한 새 정부는 민생 회복과 성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수위 기간에 해당하는 지난 두 달간 보여준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에 시장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소비심리지수 또한 빠르게 회복하며 부정적인 경제 심리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2분기 성장률 0.6% 중 0.2% 포인트를 끌어올린 가계 소비의 회복은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심리 개선을 넘어 실물 경제의 방향을 확실히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가계 소득 강화를 통한 실물 경제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한 단기적인 대책으로 ‘민생지원금’ 즉, 소비쿠폰이 지급되었으나, 12.1조 원 규모는 1분기 가계지출 부족분 36조 4099억 원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145조 6395억 원에 달하는 가계소비 연간 부족분을 고려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각 부처에 추가적인 소비 진작 프로그램 준비를 당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식음료, 에너지 등 생활 물가 안정은 서민과 중산층의 생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2020년 대비 지난달(6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3%였지만, 식료품 및 에너지 물가는 27.3% 상승하여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소득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재명 정부가 생활 물가 안정을 위해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쿠폰은 일종의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치며 재정 부담으로 지속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재정 부담 없이 정기적인 사회 소득(임금) 지급을 제도화하는 것이 민생 회복의 충분조건이 될 것이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