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만든 문화 콘텐츠를 국내에서 먼저 인정하지 못하고 해외의 평가를 통해 뒤늦게 진가를 깨닫는 현상이 한국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본국에서 외면받거나 저평가되었던 문화가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후 자국 내에서 재조명되는 ‘문화 역수입’ 현상으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되묻고 그 가치를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인기의 역전을 넘어, 문화적 자신감 부족과 외부 평가에 의존하는 인정 욕구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문화 역수입 현상은 과거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일본의 우키요에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의 노동자 계층에서 탄생한 춤으로, 초기에는 하층민의 저속한 오락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유럽 상류층에서 탱고의 강렬한 감정과 관능적인 리듬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예술로 승화된 탱고는 이후 자국에서 재평가받으며 오늘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남미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의 우키요에 역시 마찬가지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일본산 도자기를 포장하는 종이 부자재로 사용되었던 우키요에는 당시 일본 내에서는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인쇄물에 불과했다. 이를 우연히 접한 프랑스 예술가들이 우키요에의 파격적인 구도와 색채에 감명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 근대미술에 영감을 준 우키요에는 이후 일본 내에서도 재평가받기 시작했고, 체계적인 보존과 전시, 학술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일본 고유의 미학적 가치를 세계 예술사에 ‘자포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문화 역수입 현상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판소리, 막걸리 등이 외국인들에게 호평받으며 한국인들이 뒤늦게 진가를 재평가한 사례가 있으며,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 콘텐츠도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드라마나 K팝이 지구촌 곳곳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전까지, 한국인 스스로는 그 잠재력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초기 한류에 대해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최근 주목받는 사례로는 동남아와 중남미 등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들 수 있다. 이 드라마는 한국 고유의 정서, 가족주의, ‘K-신파’라 불리는 감수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감성 중심의 한국형 정서 서사’를 선보였다. 방영 초기 국내 반응도 있었지만, 해외에서 더 큰 감동을 이끌어내며 한국인들이 간직해온 ‘감정의 DNA’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폭싹 속았수다’는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눈물, 헌신, 어머니와 고향, 세대 간의 화해와 같은 보편적인 서사를 K-가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재조명하며 강인한 여성 서사로도 주목받았다. 이러한 ‘정서의 수출’은 한국적 정체성의 확인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아시아권과 중남미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스토리와 플롯의 공명력이 컸다는 분석이다.
K-팝과 드라마의 성공 과정은 대체로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은 후, 국내 언론과 정책 차원에서 ‘국가 브랜드’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패턴을 보인다. ‘한류’라는 용어 자체도 K-콘텐츠의 인기를 보도한 중화권 언론의 명명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한국 사회가 해외에서의 ‘수용’ 과정을 거쳐 비로소 자국 내에서 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외에서 인정받고 인기를 얻었을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한류’를 인식하고 호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외부로부터의 평가를 통해 가치를 확인하려는 심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는 일종의 문화적 자기 확인 방식이며,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문화 심리학적 현상이기도 하다. 자국 문화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외부의 찬사를 통해 그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경향은 글로벌 시대의 문화 흐름 속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문화 역수입의 밑바탕에는 때때로 자국 문화에 대한 집단적 콤플렉스나 자신감 부족이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야 비로소 가치를 깨닫는 현상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형성된 자학 사관과도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해외의 반응을 통해 내부 자산을 외부의 거울로 비추어 재해석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문화는 외연의 확장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순환과 회귀의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체성의 재구성이 중요하다. 문화 역수입은 이러한 순환의 한 국면이며, 문화의 미래는 그 회귀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화는 순환할 때 비로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되돌아온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언제든지 재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문화를 ‘해외 입양’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우리 안에서 제대로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은 MBC 교양PD 출신으로 ‘인간시대’, ‘PD수첩’ 등을 연출했으며, ‘중남미 한류 팬덤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을 거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으로서 K-콘텐츠와 한류 정책을 연구하며 ‘공감 한류’ 전파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