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내수 침체와 악화된 통상 환경, 껄끄러운 주변국들과의 외교 복원 등 역대 최악의 대내외 환경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재명 정부는 최선을 다해 호평을 받았지만, 진정한 시험대는 앞으로의 5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국민들은 새 정부에 우호적인 시선으로 기대감을 보내고 있으나, 1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극명한 평가에 직면했다. 일부에서는 민주화 이후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역대 최강의 정부 탄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불법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지난 6월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예상보다 박빙의 승부를 펼친 점을 고려할 때 의문이 남는다. 이 후보는 과반 득표에 실패했으며, 보수 진영의 표는 절반에 육박하여 견고한 반 이재명 정서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는 역대 최악의 대내외 환경에서 시작했다는 평가가 더 설득력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내수 경제는 이미 침체되어 0%대 경제성장률이 예고되었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통상 환경은 악화되었으며, 껄끄러운 주변국들과의 외교 복원 역시 난제였다. 또한 내란을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특검 수사가 펼쳐졌고, 수사의 칼끝은 윤석열 정권 인사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러한 긴장과 모순, 갈등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하는 중차대한 역할이 주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지 못한 점은 오히려 국민 통합적 정국 운영을 강제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 연설에서 “정의를 위한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진영을 망라한 국민 지지가 국정 추진 동력 확보와 개혁 추진에 필수적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중도를 만족시키고 보수 진영을 포용하며 정권 교체로 인한 효능감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였다.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발언은 정치적 수사라는 의심도 있었지만, 현재까지 이 대통령의 국민 통합 노력과 실용주의 노선은 진심이었다는 평가가 합당하다.
이러한 실용주의 기조는 인사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윤석열 정권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키는 등 능력만 있으면 보수 진영 인사도 적극 기용하겠다는 방침을 보였다. 또한 시민이 직접 공직자를 추천하는 국민추천제를 실시하여 약 7만 4000여 건의 추천이 접수되었고, 일부 공직자는 국민 추천 후보군에서 선발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했기에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여당 의원들을 장관직에 기용한 측면은 설명의 여지가 있었지만, 특정 지역이나 대학에 편중되지 않고 민간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를 깜짝 기용하는 파격적인 인사도 있었다.
당 대표 시절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빠른 취임 한 달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방향을 직접 설명했다. 일부 국무회의 전체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여 국무위원들의 논의 과정과 대책 마련 과정을 국민에게 소상히 밝혔고, 국무위원 간의 격의 없고 실용적인 회의 방식도 호평을 받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책 아이디어를 받는 방식 또한 새롭게 평가되었으며, 관행적으로 비공개되던 대통령실 출입 기자단과 대변인들의 질의응답 과정을 모두 공개하여 투명성을 제고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통령이 직접 문제 해결사로 나선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6월 광주광역시에서 시민과의 타운홀미팅에 참석하여 광주 군공항 이전 갈등을 중재했고, 산업재해가 발생한 SPC 공장을 방문하여 경영진으로부터 해결책을 들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산업재해 관련 국무회의에서는 건설면허 취소 등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외국인 노동자 학대 사건 언급, 이태원 참사 유가족 면담, 산림청 책임 문제 지적 등 국민들이 새 정부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발로 뛰었다는 평가다. 다만 시스템이 아닌 대통령 개인기에 의존하는 ‘만기친람’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노력은 여론조사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6월 넷째 주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64%로, 대선 득표율 49.4%보다 약 15%포인트 높았다. 9월 첫째 주 조사에서도 긍정 평가는 63%, 부정 평가는 28%를 기록하며 정권 초반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진보 진영뿐 아니라 중도층과 일부 보수층에서도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지난 100일이 매끄러웠던 것만은 아니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 역시 초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광수 민정수석이 임명 며칠 만에 재산 증식 의혹으로 사퇴했고,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는 논문 표절과 ‘보좌관 갑질’ 논란으로 지명 철회 및 자진 사퇴했다.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과거 대통령과 가까운 참모가 인사 검증을 도맡아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또한 과거 당 대표 시절 변호를 맡았던 법조인들이 대거 중용되면서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지율 측면에서 최대 위기의 순간은 8·15 특별사면 때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가 8월 둘째 주 59%, 셋째 주 56%로 하락했다. 국민 통합을 위해 여야 정치인을 고루 사면했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나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사면한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해졌다. 여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뇌물 혐의로 실형을 받은 야당 정치인까지 사면한 것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다만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가가 지지율 반등의 계기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100일은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호평을 받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지나간 100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5년이다.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지금, 1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비판에 직면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윤석열 정권 때보다 경제 지표가 호전되고 있다고는 하나, 서민들이 체감할 정도로 경기가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높은 실업률과 1% 안팎으로 예상되는 경제 성장률, 대기업의 해외 공장 이전으로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고용 지표 등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대통령은 협치를 이야기하지만, 여당이 야당을 대화 상대로 보지 않고 강경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정권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악수를 한 다음 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설전이 오가는 장면은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야당에 대한 특검 수사의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과 보수 진영의 반발 또한 국민 통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무더기 체포로 한미 관계가 긴장 상태에 들어갔으며, 미국의 지속적인 통상 압력과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압박 역시 난제다.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 역시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위기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때일수록 대통령은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대 진영을 설득하며 대화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새 정부의 노력에 많은 점수를 주었다. 마치 월드컵에서 경험만으로는 부족하고 증명해야 하듯, 정부 역시 본인의 유능함을 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정부 조직 개편안이 통과될 예정인 만큼, 이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장관들이 앞장서야 할 때다. 정부 선의에 대한 호평은 100일까지이며, 이제부터는 실질적인 성과로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