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0%대 성장률이라는 심각한 침체 국면에 빠진 가운데, 가계소득 억압으로 인한 내수 취약성이 경제 전반의 어려움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유지한 것은 소비쿠폰 지급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는 2009년 금융위기 당시와 맞먹는 수준으로, 가계 소비 개선에도 불구하고 건설 투자 부진과 수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복합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특히 건설 투자 부진은 우리 경제의 내부 문제로, 정부 정책과 의지에 따라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90년대 초, 고도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우리 경제는 급격한 대외 환경 변화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소득 분배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 및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비정규직을 선호하며 생산 자동화와 해외 이전을 택했다. 이러한 충격의 비용은 고스란히 가계,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전가되었고, 이는 경제에서 가계 소비의 역할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1년 10.3%에서 2011년 36.2%까지 급증하며 수출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수출 중심 경제 구조는 세계 경제 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90년대 이후 발생한 경제 충격 때마다 고통을 가계에 전가한 결과, 외환위기 이전 5년간 가계당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실질 가계소비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4.8%와 7.1%에 달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27년간은 각각 0.7%와 0.8%로 급감했다. 지난 30년 이상 가계의 소득과 소비가 억압되는 동안,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가계부채가 ‘경제 모르핀’처럼 사용되면서 소비와 성장 둔화의 악순환이 가속화되었다.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이 1139조 원 증가하는 동안, 부동산 자산은 소득 증가분의 7.4배가 넘는 8428조 원이 증가한 배경이다.
최근에는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생계 위기에 직면한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더 이상 가계부채를 활용한 부동산 투기에 나서기 어려워졌다. 2021년 4분기부터 가계부채가 감소세로 전환하고 지방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 건설 투자 성장 기여도 3년 6개월 연속 마이너스 기록은 이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결국 가계소비의 구조적 취약성과 연결된 건설 투자 침체의 근본 원인은 가계소득의 억압이며, 이에 따라 가계소득 강화가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배포가 소상공인 매출 증대에 일부 기여했지만, 이는 늪에 빠진 경제를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인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친다.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인해 소비쿠폰을 반복적으로 지급하는 것 역시 어렵다. 따라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소득을 지원하고, 그중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 도입이 시급하다.
정기적인 사회소득은 ‘사회임금’ 또는 ‘사회소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고, 사회 유지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되는 ‘사회 몫’에서 비롯된다.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생산 결과물의 일정 부분을 사회 몫으로 떼어내고, 이를 사회소득으로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는 정치와 민주주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시장이 과잉되고 민주주의가 취약할 때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될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민주주의가 과잉되고 시장이 죽은 곳에서는 경제가 활력을 잃는다. 근대 산업 문명을 이끈 영국에서 시장과 민주주의라는 상극적이면서도 상생해야 하는 제도들이 조화를 이루며 현대 사회의 황금기를 이끌었듯이, 균형 잡힌 시장과 민주주의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사회소득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지표인 사회지출에서 우리나라는 OECD 평균(21.229%)에 비해 낮은 15.326%로 하위 그룹에 속한다. 이는 GDP 대비 약 5.903% 포인트, 금액으로는 151조 원에 해당하며, 국민 1인당 약 300만 원, 4인 가족 기준 연간 1200만 원의 사회소득 부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회소득의 절대적 과소, 시장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 그리고 시장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는 우리나라 가계 소비지출의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0.1%는 세후 월평균 1억 2215만 원을 버는 반면, 중위 50%는 215만 원, 소득 창출 활동자 평균 월수입은 282만 원에 불과하며, 하위 41%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극심한 불평등은 ‘을’ 간의 갈등을 일상화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기적인 사회소득 도입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완화하고, 사회소득의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함으로써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 세금 도입은 어렵다. 한국의 최고 개인소득세율은 OECD 국가 중 높은 편이지만,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은 낮아 표면상 세율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니계수로 측정한 조세 재분배 효과 역시 네덜란드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치는데, 이는 수많은 공제 혜택으로 인해 고소득층에게 세금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1110조 원의 소득 중 410조 원에 공제 혜택이 적용되어 101조 원의 세금이 감면되었다. 특히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은 반면, 중위 50%는 276만 원에 불과했다.
작년 110조 원이 넘는 세금 공제액을 현행 공제 방식 폐지 후 확보하고, 이를 인적 공제만을 기준으로 국민에게 1/n로 배분하면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 지급이 가능하다. 세금 공제 방식의 개선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전체 국민의 90% 이상이 순혜택을 보고, 소득이 낮을수록 순혜택이 증가하여 재분배 효과 또한 크다.
결론적으로,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수술하여 정기적인 사회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소득과 소비 지출을 크게 강화하는 핵심적인 방안이다. 이러한 소득 강화는 기본 금융 도입과 결합될 경우,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AI 대전환 시대에 발맞춘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