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0%대 성장률이라는 심각한 저성장의 늪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3년 8월에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유지한 것은 소비쿠폰 지급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는 2009년 금융위기 시절의 성장률과 맞먹는 수치로, 가계소비의 일부 개선에도 불구하고 건설투자 부진과 수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 중 건설투자 부진은 우리 경제 내부의 문제로, 정부 정책과 의지에 따라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초, 고도성장이 막을 내리면서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기업들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과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비정규직을 선호했으며, 생산 자동화 및 해외 이전을 택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의 비용은 고스란히 가계,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전가되었다. 그 결과 경제의 핵심 동력인 가계소비의 역할은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내수 취약성은 수출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켰고,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1년 10.3%에서 2011년 36.2%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이러한 수출 의존 경제 구조는 세계 경제 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직격탄을 맞는 취약성을 드러냈다.
지난 30년 이상, 우리 경제는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그 고통을 가계에 전가하는 방식을 반복해왔다. 외환위기 이전 5년간 가계당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실질 가계소비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4.8%와 7.1%였지만, 외환위기 이후 27년간은 각각 0.7%와 0.8%로 급감했다. 이는 가계의 소득과 소비가 억압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경제 모르핀’이라 불리는 가계부채가 동원되었고, 이는 소비와 성장 둔화를 가속화하며 악순환을 만들었다. 지난 30년간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이 1139조 원 증가하는 동안, 가계의 부동산 자산은 소득 증가분의 7.4배가 넘는 8428조 원이 증가했다.
문제는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 그리고 고금리 상황 속에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더 이상 가계부채를 통한 부동산 투기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2021년 4분기부터 가계부채가 감소세로 전환하고, 지방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며 건설투자 성장 기여도가 3년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배경이다. 이처럼 가계소비의 구조적 취약성과 연결된 건설투자 침체의 근원은 결국 가계소득의 억압에 있으며, 따라서 가계소득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소비쿠폰 지급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단기적인 효과를 보았지만, 늪에 빠진 경제를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국가 재정 부담 또한 반복적인 지급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소득을 지원하고, 그중 일정 비율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의 도입이 시급하다. 정기적 가계소득은 ‘사회임금’ 혹은 ‘사회소득’으로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고 사회 유지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국제 사회지출 규모를 비교해보면, 2024년 기준 OECD 평균(21.229%) 대비 우리나라(15.326%)는 하위 그룹에 속하며, 이는 국민 1인당 약 300만 원, 4인 가족 기준 연간 1200만 원 상당의 사회소득 부족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가계 소비지출의 구조적 취약성은 사회소득의 절대적 과소, 시장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 그리고 시장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비롯된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0.1%의 세후 월평균 실질수입은 1억 2215만 원인 반면, 중위 50%는 215만 원, 소득 창출 활동자의 평균 월수입은 282만 원에 불과하며, 하위 41%는 최저임금 기준 월수입에도 미치지 못하는 끔찍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정기적 사회소득의 도입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완화하고, 지역화폐 지급을 통해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우리나라의 높은 개인소득세율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이 낮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공제 혜택으로 인해 소득이 높은 계층에게 세금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1110조 원의 소득 중 410조 원에 공제 혜택이 적용되어 101조 원의 세금이 감면되었으며,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았다.
현행 공제 방식을 모두 폐지하고 확보한 세금을 인적 공제 기준으로 전체 국민에게 1/n로 배분할 경우,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의 지급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식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90% 이상의 국민에게 순혜택을 제공하며, 소득이 낮을수록 순혜택이 증가하여 재분배 효과 또한 크다.
궁극적으로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개혁하여 정기적 사회소득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소득과 소비지출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소득 강화는 ‘기본사회’의 한 축인 기본금융 도입과 결합될 때,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AI 대전환 시대의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