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9월이 다가오자, 굽이진 길을 따라 철조망과 경비초소가 늘어선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휴전국’임을 실감케 하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이다. 푸른 하늘 아래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바라보는 경험은, 단순히 가을 나들이를 넘어선 ‘안보 견학’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는 분단의 현실을 직접 느끼고 통일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북한 개성의 일상은 분단의 아픔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통일 문제는 더 이상 나와 무관한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현실임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1층과 2층의 전시실은 분단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짚어보며 통일의 미래를 제시한다. 특히 1년에 2~3차례 열리는 특별기획전시는 다양한 주제로 분단 현실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이날 기자가 마주한 2층의 ‘그리운 내 고향’ 전시는 실향민들이 그린 5,000여 점의 북한 고향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섬세하게 묘사된 북한의 풍경 속에는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깊은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놓인 ‘통일의 피아노’는 2015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으로, 분단의 상징인 DMZ 철조망을 피아노 현으로 사용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전시실 곳곳에는 분단 역사, 6.25 전쟁 자료, 남북 교류 관련 전시가 소개되어 있으며, 영상실에서는 통일 교육 다큐멘터리를 상영하여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야외 전망대에 서면 개성 시내, 북한 마을의 논밭과 건물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듯하지만 실상은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자리한 북한의 모습은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현실을 각인시킨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개성 시내, 개풍군 마을 일대,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까지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어, 북한이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연간 약 100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하는 인기 있는 안보 견학지이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 맑은 날씨 속에서 망원경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논두렁 사이를 이동하는 개성 주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나들이 장소를 넘어, 분단의 현실과 통일의 가능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이러한 현장의 경험은 최근 발표된 2026년 통일부 예산안이 보여주는 변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지난해보다 약 20% 이상 증액된 1조 2,378억 원 규모의 예산안은 통일이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과 연결된 정책임을 보여준다. 남북협력기금이 1조 25억 원으로 확대되었고, 인도적 지원, 경제 협력 사업, 문화 교류 및 국민 공감 프로젝트 등이 주요 사업으로 포함되었다. 특히 체험 사업, 민간 통일운동, 통일 문화 교육 등이 새롭게 예산안에 포함되면서, 국민들이 통일 관련 정책을 ‘보고, 느끼는’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예산은 단순히 숫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격차, 역사적 상처, 그리고 앞으로 닦아나가야 할 평화의 길을 담고 있다. 예산은 크게 인도적 문제 해결(약 6,810억 원), 경제협력 기반 조성, 사회문화 교류, 국민 공감 확대 분야에 배분된다. 인도적 문제 해결은 이산가족 지원과 구호 활동에, 경제협력 기반 조성은 교류 협력 보험, 경제협력 대출 등 남북 교류 재개를 위한 토대 마련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문화 교류는 남북 간 문화·체육 교류, 민간 교류 사업 등을, 국민 공감 확대는 통일 문화 체험, 민간단체 지원,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예산 항목이 단순한 ‘정책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체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 공감 사업은 오두산 통일전망대나 DMZ 탐방 같은 현장 체험과 밀접하게 연계될 수 있다. 즉, 정부 예산은 국민이 통일 문제를 ‘체험’할 기회를 넓히는 자원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더불어, 오두산 통일전망대 이용객은 DMZ 생생누리 방문 시 입장료를 반액 할인받는 ‘DMZ 연계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연계 프로그램은 안보 견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마주한 북한 너머의 풍경은 통일·안보 정책이 단순한 정부 문서 속 숫자가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2026년 통일부 예산안은 증액된 규모와 신규 사업들을 통해 기대를 갖게 한다. 특히 인도적 지원, 경제협력, 통일 문화 및 국민 체험 사업이 국민의 삶 속에서 통일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이끌어낼지가 주목된다. 그러나 예산이 책상 위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집행 가능성, 남북 관계의 흐름, 주민과 민간단체의 참여, 지역 인프라 정비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야만 예산이 ‘체감되는 정책’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청명한 하늘과 함께 풍경을 바라봤던 오두산 통일전망대처럼, 눈앞의 풍경이 통일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공간들이 더욱 많아지고, 정부 예산이 그 공간들을 지원하는 강력한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