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025년 약 728조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며, 특히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전년 대비 8.1% 증가한 총예산 중 AI 3강 진입을 위한 예산을 3배 늘린 10조 1000억 원으로 책정했으며, 이 중 제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은 1조 10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이 예산은 AI 팩토리 선도 프로젝트, 피지컬 AI 개발, 휴머노이드 개발, 온 디바이스 AI 개발 등 제조 산업의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투자가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깊은 고민과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AI 팩토리 500개 이상 구축이라는 목표 달성에만 집중할 경우, 자칫 과거 산업 인터넷 실패 사례를 답습할 위험이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프레딕스(Predix) 사례는, 대상 고객의 실제 고민과 현장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혁신적인 플랫폼 구축에만 매몰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실패를 명확히 보여준다. 성공적인 AI 팩토리 구축을 위해서는 단순히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제조업의 다양한 규모와 종류에 따른 참조 모델을 정교하게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피지컬 AI 분야 역시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피지컬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는 기존 AI 학습 데이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과 관계 및 추론 메타데이터, 다양한 맥락과 비정형적 상황 데이터, 시공간적 일관성 및 멀티모달 통합, 상호작용 및 에이전트 행동 데이터 등 복합적인 특성을 갖춘 데이터 구성이 필수적이며, 이는 피지컬 AI 분야에서 마주하게 될 매우 어려운 도전 과제이다. 엔비디아의 옴니버스와 코스모스와 같은 플랫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러한 수준의 플랫폼을 구축할 역량이 있는지, 혹은 외부 기술 도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신중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진행된 디지털 트윈 과제들의 결과물을 냉철하게 비판적으로 되짚어보고,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나아가야 한다.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진 산업단지를 활용하여, 해당 단지의 특징에 기반한 AI 고도화 과업을 명확히 정의하고 특화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더 나아가 팔란티어의 온톨로지 모델과 같은 복합적인 솔루션 검토를 통해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과 AI 전문기업 간의 라운드테이블을 활성화하여 문제 공유 및 협업 방안을 모색하고, 우수 사례를 공유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산업 AI 허브 구축을 통해 모범 사례, 기술 솔루션, 데이터를 개방함으로써 AI 전환에 대한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도록 지원해야 한다.
산업 AX는 아직 어느 나라도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 영역이며, 각 국가의 제조 현장, 문화, 업무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단일 모델이나 방법론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팔란티어와 같이 고객 현장에 직접 투입되어 문제를 정의하고, 효과 분석 및 데이터 확보 방안을 함께 협의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산업 AX는 단순히 AI 엔지니어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엔지니어 및 전문가와 함께 풀어가는 과제를 통해 성과가 도출되는 분야이다. 두 문화 간의 간극과 소통 문제를 해결하고 원활한 협업을 지원하는 것이 국가 과제 성공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른 AI 과제들도 중요하지만, 산업 AX는 대한민국 제조업 경쟁력 기반을 재구축하는 핵심 과제이므로 반드시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피드백과 평가, 그리고 민첩한 개선이 필수적이며, 정책적으로도 이러한 기민성을 적극적으로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벤처포트 설립, 2003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전략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터 경제 포럼 의원, AI챌린지 기획, AI데이터 세트 구축 총괄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