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팝과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 뒤편에는 해결되지 않은 내부적인 문제들이 존재하며 한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십수년간 제자리걸음인 ‘차별금지법’의 부재는 한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는 단순히 문화 현상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최근 K팝 시장은 BTS의 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블랙핑크, 세븐틴, NCT 등이 기존 기록을 경신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스트레이 키즈는 빌보드 200 차트에서 7개 앨범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K팝의 글로벌 영향력을 입증했다. 이들의 성공은 영어 소통 능력과 군 복무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멤버 구성 등 향후 K팝 그룹의 성공을 위한 새로운 레시피를 제시하며 미래 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이러한 한류의 인기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 돌파라는 기록적인 수치로 이어지며 한국 관광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한국을 미디어로만 접하던 것에서 나아가 직접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한류를 향유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거리에서 목격하는 과격한 혐중 시위는 한류를 매개로 한국을 접한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명동, 광화문 등 도심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이러한 시위는 중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한국 사회의 이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한국 미디어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콘텐츠 내에 내재되거나 의도치 않게 드러나는 인종주의적 감수성과 차별적인 표현들에 대한 세계 팬들의 민감한 반응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K팝 팬덤 내부에서 새로운 남성성, 여성성을 포함한 젠더 표현 문제가 이슈화되고, 아이돌 문화가 자유로운 젠더 정체성 표현의 자료가 되는 현상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K-뷰티의 미백 중심적인 경향은 인종과 피부색주의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 사회가 성정체성과 피부색으로 표현되는 인종 문제가 교차하며 올바름의 경계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란스럽지만 건강한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류 연구자들은 한류 소비자들이 한국 콘텐츠와 생산된 환경에서 새로운 가치를 경험하고자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경쟁 사회의 압축 성장 속에서 드러나는 한국의 픽션물들은 시청자들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며, 개발도상국들에게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라는 극복의 모델을 제시한다. 돌봄, 연대, 공동체의 선을 위한 개인의 태도 등 한류가 만들어낸 매력은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이러한 과정은 항상 위태로움을 동반한다.
그 위태로움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 내부의 인종주의와 성차별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나타나는 외국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재현이나 ‘청년경찰’의 연변 범죄자 집단 묘사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 문제와 연결된다. 또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과도한 미적 기준이나 드라마에서의 여성 및 성소수자 재현에 대한 팬들의 논쟁은 현실 속 미투 운동과 퀴어 퍼레이드 논란으로 이어진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이 명동에서 마주하는 과격한 혐오 시위는 미디어로 접한 한류 팬들이 한국의 차별적인 현실을 극명하게 경험하는 순간이 된다.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은 한류를 ‘밑에서부터의 세계화’, 즉 힘없는 일반 수용자들이 만들어낸 버텀업 문화 현상으로 규정한다. 그렇기에 선한 영향력, 배려와 연대, 돌봄과 겸손, 공동체의 가치가 더욱 중시된다. K팝 그룹과 팬덤의 관계, 드라마 주인공들의 가치 추구 역시 이러한 맥락과 상통한다. 한류는 비주류의 아름다움으로서 차별과 배제가 가장 큰 적이 된다.
결론적으로, 한류의 위기는 시장 축소보다는 우리 내부의 차별이라는 적과의 싸움에서 패배할 때 찾아올 것이다. 한류의 미래,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지난 십수년간 제자리걸음인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