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과 궁궐이 ‘왕릉팔경’이라는 새로운 여행 프로그램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11월 10일까지 총 22회에 걸쳐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적을 답습하는 것을 넘어, 역사적 맥락과 그 안에 담긴 ‘문제’와 ‘해결’의 과정을 후대에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의 운영 배경에는 왕릉이라는 공간 자체의 복잡성과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역사적, 제도적 ‘문제’들이 존재해왔다.
조선왕릉은 600년 이상 이어져 온 왕실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시대의 변화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1908년 순종 황제가 반포한 「향사리정에 관한 건」 칙령은 제사 횟수를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는 왕릉 제도의 변화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기존의 복잡했던 제사 체계를 간소화하려는 시도는 제사 횟수와 관련한 혼선을 초래했으며, 특히 한식날 제사가 청명으로 변경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기록은 제례 절차의 혼란을 보여준다. 이러한 제례 절차의 변화는 왕릉의 본질적인 기능과 의미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더불어, 왕릉의 조영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상징 체계 역시 시대적 ‘문제’와 ‘해결’의 역사를 보여준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봉분을 억새로 덮은 것은 그의 유언을 따른 것이지만, 이는 일반적인 왕릉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는 태조와 그의 아들 태종 간의 갈등이라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려는 후손의 노력이 결합된 결과이다. 또한, 표석 설치의 기원 역시 송시열의 상소를 통해 시작된 것으로, 후손들이 왕릉을 구별하지 못할 수 있다는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이었다. 전서체로 표석을 제작하자는 주장 역시 제례에 대한 엄격함과 기억 보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대한제국 시기로 넘어오면서 왕릉의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 조선 왕릉의 형식을 벗어나 대한제국 황릉의 양식을 따르는데, 이는 왕조에서 황제국으로 체제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반영한다. 석물의 배치, 봉분의 규모, 향어로 장식 등은 황제의 권위를 강조했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라는 ‘문제’가 깃들어 있었다. 홍릉 비각 표석을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은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복잡한 역사와 상징이 담긴 조선왕릉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은 조선 왕실 중심에서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적으로 초점을 확장하며 근대 전환기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과거의 ‘문제’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해결 과정을 탐색하며 미래 세대가 역사를 기억하고 이어갈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왕릉의 복잡한 역사와 제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제’와 ‘해결’의 과정을 해설사의 안내를 통해 배우고 체험한다. 어린 참가자가 역사학자가 되어 문화유산을 지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는 모습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단순한 관광을 넘어 역사적 교훈을 얻고 미래를 설계하는 ‘문제’ 해결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 뒤에 담긴 역사의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며 미래 세대가 이를 어떻게 계승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