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면 귀신이라도 나올 듯 텅 빈 원도심과, 텅 빈 채 독수공방 신세가 된 혁신도시의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처럼 생태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사회 곳곳에 ‘가짜’ 정책의 흔적만을 남긴다. 세상을 움직이는 대부분의 일은 고유의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마치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가 당시 미국 유권자들의 관심을 국내 문제로 되돌려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존재한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자원을 낭비하게 되거나,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방 도시를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조성된 혁신도시는 정작 혁신도시로 발령이 난 부부의 배우자가 취업할 일자리가 없어 ‘못 가는’ 현실을 낳고 있다. 이로 인해 젊은 부부들은 지역으로의 이주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인구 증가 없이 섣불리 신도심을 개발하면서 많은 지방 도시들은 원도심 공동화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과거 활기찼던 원도심은 이제 사람의 발길이 끊긴 유령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건물이나 편의시설이 아니다. 창원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 50km도 채 되지 않지만, 자동차 없이는 사실상 왕래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지역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통근 전철’이다. 이처럼 단순한 교통망 확충을 넘어선 지역 간의 ‘연결성’ 확보는 지역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타당성 검토에서 늘 난항을 겪는 이유는 바로 생태계적 관점의 부재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이러한 ‘생태계’의 중요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과거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하던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파운드리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파운드리 사업은 칩 설계부터 최종 패키징 및 후공정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로 구성된다. 전문 칩 설계회사(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지적 재산권) 기업, 파운드리, 그리고 패키징 및 후공정 업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숫자는 물론, 패키징 기술 등 후공정 분야에서 TSMC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다. 이는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단순한 개별 기술력이 아닌, 거대한 ‘생태계 전쟁’으로 이미 전환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다.
생태계를 번성시키는 세 가지 조건은 ‘종 다양성’,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그리고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종 다양성이 깨진 생태계는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이 단일 품종 감자 의존으로 파멸을 맞았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또한, 태양에너지로부터 시작되는 물질의 끊임없는 순환 없이는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폐쇄된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취약해지며,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합스부르크 증후군’은 이러한 폐쇄성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지방 도시의 원도심 공동화와 혁신도시의 텅 빈 모습, 그리고 첨단 반도체 산업에서의 경쟁력 약화는 모두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려가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세상을 움직이는 진리는 결국 ‘생태계’를 살피는 데서 시작되며, 이를 간과하는 모든 정책과 노력은 ‘가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