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간 출생아와 혼인이 10개월 연속 증가하며 33년 만에 반가운 반등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러한 긍정적 흐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필수적인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아버지들이 겪는 일상의 불편함과 성평등 돌봄 환경의 미비는 ‘아이를 낳길 잘했다’는 부모의 확신을 흔들 수 있으며, 이는 결국 통계 수치 이상의 ‘행복지표’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겸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은 현재의 출산율 반등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양육 친화 인프라’가 근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은 불편함이 누적되면 언제든 상승세가 꺾일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생활 속 기본 장치들을 촘촘하게 마련할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성평등 관점에서의 보육 인프라 부족이다. 2024년 11월 27일 기준, 서울시 개방·공중화장실 3708곳 중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곳은 1123곳, 즉 30%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 중 여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경우가 575곳, 남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경우는 23곳에 그쳐,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아버지들이 겪는 불편함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기저귀 교환대를 찾아 헤매거나, 변기 위에서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 혹은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복도를 이용해야 하는 사례들은 ‘보육 정책’을 넘어 ‘생활 인권’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불평등한 환경은 성평등 돌봄 실현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하다. 올해 국가공무원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설 만큼 아버지들의 육아 참여 의지는 높아졌고, 관련 프로그램 만족도 역시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2025년, 가족센터 등 공공·위탁 기관들은 예산 삭감과 부족으로 가족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기저귀 교환대나 유아 세면대 설치 예산은 ‘부대비’로 분류되어 삭감 1순위가 되기 쉽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 신도시와 동네 상가 간의 인프라 격차가 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역별 불평등이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들의 행동으로 증명된 변화의 가능성은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에서 2025년 5월 진행된 ‘유아차 런’과 6월 ‘탄생응원 서울축제’는 건강한 양육 문화와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새로운 양육 문화의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100인의 아빠단 50가족이 서울대공원 캠핑장에서 진행한 1박 2일 공동 양육 체험은 양육 스트레스 감소와 관계 증진에 기여하며 더 많은 양육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정은 분명한 변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이러한 민간의 에너지를 일상으로 연결하고, 부모들의 열정을 ‘일상의 편의’로 이어주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변화를 증명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네 가지 기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국공립 시설, 대중교통 환승 거점, 대형 민간 시설에 가족 화장실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남녀 화장실 모두 유아 거치대, 교환대, 유아 세면대, 벽면 발판을 같은 비율로 갖추도록 ‘생활 SOC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 성평등 인프라 표준화가 필요하다. 둘째, 아버지 교육 프로그램 예산을 증액하고 주말 자녀 동반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시설 및 인프라 개선을 통해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교육·체험 프로그램에서 얻은 만족도를 인프라 개선 요구로 연결하는 ‘정책 → 행동 → 문화 → 정책 순환 구조’를 확립하여 문화와 정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인식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체험형 행사와 연계한 ‘돌봄 시민권’ 캠페인을 확산해야 한다.
출산율 반등은 희망의 신호탄이지만,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가 미비하다면 ‘출산은 기쁜 일’이라는 메시지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으면 축하받고, 어디서든 편하게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도시와 나라. 이러한 기본이 갖춰지는 순간, 출산율 그래프보다 훨씬 더 높은 ‘행복지표’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채울 것이다. 거창한 구호가 아닌, 화장실의 작은 교환대, 스포츠 시설의 가족 탈의실처럼 눈높이에 맞춘 ‘생활 장치’이야말로 지속적인 반등을 이끌어낼 핵심 열쇠이며, 지금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