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형사절차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종이 문서가 사라지고 전자문서 형태로 사건 정보가 유통되는 새로운 시스템 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와 변호인 접근성 확보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일 ‘형사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형사절차에서 서류는 더 이상 종이가 아닌 전자화된 문서 형태로 작성되고 유통된다. 이는 수사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신속한 업무 처리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변호인이 사건 정보에 접근하고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개진하는 데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종전에는 변호인이 선임계나 의견서 등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형사사법포털(www.kics.go.kr)을 통해 온라인으로 제출해야 한다. 또한, 체포·구속통지서, 수사결과통지서 등 각종 통지서류 역시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선임 변호인이 형사사법포털에 제출한 선임계에 기재된 연락처 정보는 수사기관이 사용하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연동되어 수사기관은 해당 연락처로 통지하고, 변호인은 통지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형사사법포털에서 사건 정보에 쉽게 접근하도록 시스템이 강화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 개선에도 불구하고, 전자화된 절차에 대한 변호인들의 충분한 숙지와 적응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과거에도 경찰청은 1999년 수사기관 최초로 피의자신문 과정에 변호인 참여 제도를 도입하고, 전자기기 사용 등 메모권 보장, 경찰 수사서류에 대한 열람·복사 신청 시 신속 제공, 사건 진행 상황 통지 확대 등 변호인 조력권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의 조력권 실질적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책 마련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한 해결책 모색을 위해 경찰청은 시·도경찰청과 지방변호사회의 간담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경찰 수사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을 논의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경찰관서에 설치된 수사민원상담센터에 변호사의 무료 법률상담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될 예정이다. 더 나아가 서울변호사회에서 202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법경찰평가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한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단체와의 협력도 강화될 전망이며, 평가 결과는 경찰 수사 제도 개선과 수사관 교육 자료로 활용될 계획이다.
이처럼 경찰청은 이번 변호인 조력권 강화 방안이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것을 넘어, 변호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국민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과 충분한 소통이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비로소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