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산업화 시대, 팍팍했던 삶 속에서 ‘잘 살아보겠다’는 꿈을 안고 도시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수도권 배후 도시로서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기록하며 수많은 공장들이 들어섰던 부천은 당시 서민들의 희망이 깃든 땅이었다. 서울의 포화 상태를 피해 온 이들에게 부천은 최소한의 보금자리이자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는 곳이었다. 당시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통해 가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은 전국민에게 공감을 얻었고, 이는 부천 원미동을 우리 모두의 고향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부천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1992년,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과 함께 삼정동에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서면서 지역 사회는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했다. 1995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이 소각장은 하루 200톤에 달하는 쓰레기를 처리했지만, 1997년 환경부 조사에서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마을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소각장 폐쇄 운동을 벌였고, 결국 2010년 대장동 소각장으로 폐기물 소각 기능이 이전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 쓸쓸한 폐건물에 새로운 운명이 찾아왔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33년 전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장이 2018년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환골탈태하게 된 것이다. 과거 굴뚝과 소각로의 위용은 그대로 간직한 채, 건물은 하늘과 채광을 끌어들이는 ‘에어갤러리’로 변모했다. 쓰레기가 온전한 모습을 바라봤던 마지막 관문이자 ‘관’이었던 지하 깊숙한 벙커는 이제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되는 핵심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쓰레기 수거 트럭이 생활 쓰레기를 쏟아내던 쓰레기 반입실은 멀티미디어홀(MMH)로, 펌프실, 배기가스처리장, 중앙청소실 등 거대한 설비 공간들은 아카이빙실로 리모델링되어 과거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은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 운동의 전개 과정, 그리고 소각장이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기까지의 눈물겹도록 생생한 역사를 한눈에 그려내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건물 밖으로 나서면 동네 어린이집 아이들의 작품으로 꾸며진 ‘숲이 그린 이야기’ 벽화가 반겨주며, 모든 것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처럼 부천아트벙커B39는 과거의 아픔과 역사를 딛고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공간으로 재탄생하며,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이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된 것처럼, 도시의 폐기물 또한 창의적인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오래 견디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