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실에 ‘경청통합수석’이라는 새로운 직책이 신설되었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경청’이라는 명칭을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 있어 ‘말하기’보다 ‘듣기’에 방점을 찍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조직 개편은 대통령실의 성격과 신임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지표로 작용한다.
과거 역대 정부의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의 목소리를 대외적으로 전달하는 ‘입(口)’의 역할은 주로 홍보수석이 담당해왔다. 김대중 정부까지 ‘공보수석’으로 불리던 이 직책은 노무현 정부 시절 ‘홍보수석’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국민소통수석’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대국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소통은 단순히 국민에게 말을 거는 일방적인 행위를 넘어선다. 사람 간의 대화가 말하기와 듣기의 쌍방향 과정이듯, 대통령의 소통 역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가 필수적이다.
과거 정부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이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는 대중에게 깊은 통찰을 전한 성인(聖人)의 한자 ‘성(聖)’이 귀(耳)와 입(口), 왕(王)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진정한 성인은 대중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실 내에서 대통령의 ‘귀(耳)’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민정수석실은 본래 여론과 민심을 파악하는 역할을 담당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 기구 통제에 치중하여 대통령의 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배경에서 ‘경청통합수석’의 신설은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경청’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할까. 기왕 ‘경청통합수석’이라는 대통령의 귀가 열린 만큼,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통령의 경청은 반대자의 목소리까지 기꺼이 수용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단순히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만 듣는 것은 진정한 경청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 6월 26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에서 추경 예산안 시정 연설 후 야당 의원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모습은 대통령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향후 국정 운영 과정에서 이러한 모습이 더욱 자주 나타난다면, 반대편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정치의 복원과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통령의 경청은 반드시 실제 정책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경청 제스처는 ‘상징적 반응성’에 그칠 수 있지만, 경청한 내용을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실질적 반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25일, 호남 지역 타운홀 미팅에서 한 시민이 제기했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진상 규명 요구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당장 제가 나선다고 뭐 특별히 될 것 같지는 않다”고 답한 바 있다. 참사로 가족을 잃은 시민은 대통령의 공감에 위안을 받았겠지만,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감 역시 함께 느꼈을 것이다. 대통령은 모든 민원을 정책에 반영할 수는 없겠지만,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책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의 경청이 단순한 상징적 반응성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 반응성으로 이어질 때 국민들은 비로소 정권 교체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효능감이 국민적 지지로 쌓여야만 이재명 정부는 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