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지방 도시의 활성화를 위해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신도심을 개발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상사 대부분이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듯, 이러한 생태계를 고려하지 못한 정책은 결국 껍데기뿐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해가 지면 귀신이라도 나올 듯 텅 빈 원도심과, 홀로 남겨진 이들만 사는 외로운 혁신도시가 바로 그 증거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생태계’를 간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야기한다.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종 다양성’,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그리고 ‘개방성과 연결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상호작용하며 전체를 지탱하는 종 다양성은 마치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처럼, 단일 품종 감자에만 의존하던 생태계가 병충해에 무너져 수많은 희생자를 낸 사례에서 그 중요성이 드러난다. 또한, 태양 에너지가 식물, 동물, 미생물을 거쳐 순환하고, 쓰러진 나무가 분해되어 토양으로 돌아가는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구조가 깨지면 생태계는 곧바로 붕괴한다. 마지막으로,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 없는 폐쇄적인 생태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상간에서 보듯 유전적 고립과 취약성 증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가 지방 도시 정책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면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방을 살리겠다며 뜬금없는 곳에 혁신도시를 만들었지만, 젊은 맞벌이 부부들은 배우자의 일자리가 없으면 혁신도시로 발령받더라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혁신도시는 ‘사람 없는’ 도시로 남게 될 위기에 처했다. 또한,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신도심에 아파트만 짓는 정책은 원도심을 유령도시로 만들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방 도시가 ‘원도심 공동화’라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창원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가 50km도 채 되지 않지만,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조차 어려운 현실 때문에 마음의 거리는 500km처럼 느껴진다. 청년들이 간절히 바라는 ‘통근 전철’과 같은 교통망 구축은 타당성 검토에서 번번이 난항을 겪고 있는데, 이는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생태계’를 놓친 실패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압도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가 대만의 TSMC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 역시 ‘생태계’의 부재에 있다. 파운드리 산업은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 등 여러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IP 파트너의 수나 패키징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TSMC의 생태계에 현저히 밀리고 있으며,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바뀐 지 오래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으며, 생태계 자체를 번성시켰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세상일의 대부분이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감을 직시해야 한다. 생태계를 살피지 못하는 모든 정책은 ‘가짜’ 정책이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면, 그는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려만이 텅 빈 혁신도시와 죽어가는 원도심 문제를 해결하고, 첨단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