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적’에서 ‘보이지 않는 적’으로 전환되는 21세기 안보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한국은 국제 사회의 단순한 수용자를 넘어 새로운 규범과 비전을 제시하는 ‘능동적 제안자’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이라는 미래 기술 분야에서 한국만의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국제 무대에 확산시키려는 노력은 한국 외교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다.
기존의 안보 개념은 영토와 국경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군사적 위협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AI 시대는 사이버 공간과 알고리즘을 통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허위 정보의 무기화, 자율무기 시스템의 확산, 국가 간 일상화된 사이버 공격 등은 더 이상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국제평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안보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안보리가 AI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어야 하는 명확한 근거가 마련되었으며, 한국은 이러한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미래 안보 거버넌스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구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한국은 AI 발전의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 기술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동시에 소외 계층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은 AI 거버넌스의 핵심 모순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한국은 ‘모두를 위한 AI’라는 포용적 비전을 제시하며, 기술 발전의 혜택이 모든 계층에 고르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서구 선진국들이 주도해 온 기술적 우월성과 경제적 효율성에 집중하는 논의에서 벗어나, AI 거버넌스에 ‘접근성’과 ‘형평성’이라는 새로운 축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접근이다. 나아가 AI를 민주주의 발전의 동력으로 인식하며, 기술 발전과 민주적 참여의 선순환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AI가 민주주의에 미칠 위험에 대한 현실적인 경고와 함께, 기술 발전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이번 안보리 공개 토의에서 주목할 점은 AI를 단독 의제가 아닌 기후변화, 지속가능발전과 연계한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AI가 주도할 기술 혁신이 기후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은 AI 발전과 환경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독창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12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의 ‘재생에너지 기반 AI 데이터센터’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은 이러한 비전이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협력은 한국이 아시아의 AI 수도로 부상할 수 있도록 글로벌 자본을 연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한국의 AI 비전이 국제적인 신뢰를 얻고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이번 UN 무대를 통해 한국의 AI 외교는 완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유엔총회와 안보리를 통한 글로벌 규범 제안, 블랙록과의 협력을 통한 실행 자본 확보, 그리고 향후 공개될 ‘AI 이니셔티브’를 통한 지역적 확산이라는 삼각 구조는 전통적인 정부 간 외교를 넘어선 ‘민관외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정부가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민간 자본이 이를 뒷받침하며, 국제기구에서 규범을 제안하는 이러한 접근은 중견국 외교의 진화된 형태라 할 수 있다.
기술력에서 미국, 제조업 기반에서 중국이 우위를 점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은 ‘포용적 AI’와 ‘지속가능한 AI’라는 새로운 가치 중심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는 첨단 기술 발전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이바지하는 ‘모두를 위한 AI’ 비전을 국제사회의 뉴노멀로 자리 잡게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AI 허브로 부상한다면, 이는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미국-중국 양극 구조에 제3의 축을 형성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AI 뉴노멀’이라는 표현에는 한국이 추구하는 AI 거버넌스가 ‘예외적 이상’이 아닌 ‘보편적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AI 시대를 선도하는 접근 방식은 국제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 시대의 발전 패러다임이 소수 기술 강국 중심의 배타적 모델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모든 국가와 계층이 참여하는 포용적 모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대한민국의 답은 명확하며, 이는 기술 발전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 글로벌 차원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는 실용적 판단에 기반한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기술의 독점이 아닌 공유와 협력에 있음을 한국이 세계에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실제 국제 규범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과 정책적 실행력이 중요하겠지만, AI 시대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안보리 공개 토의는 이미 중요한 의미를 확보했으며, 한국이 ‘AI 룰메이커’로 부상할 역사적 기회가 열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