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과 사업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때로는 그 근본적인 문제점을 간과하여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현재 다수의 지방 도시와 국내 첨단 산업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이러한 ‘생태계’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한 결과로 분석된다.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 사람이 살지 않는 혁신도시, 그리고 경쟁력을 잃어가는 산업 현장 모두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정책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언제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존재한다. 지방 도시의 활성화를 명분으로 조성된 혁신도시는 정작 그곳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근로자들의 배우자가 취업할 일자리가 부족하여 가족 전체가 이주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을 넘어,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종 다양성’, 즉 다양한 직업과 삶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결과다. 또한, 지방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신도심 개발에 나서면서 기존의 원도심은 인구 감소와 상업 시설의 쇠퇴를 겪으며 공동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는 마치 닫힌 생태계가 외부와의 교류 없이 점차 취약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창원과 부산 간의 짧은 직선거리에도 불구하고 지역 청년들이 “마음의 거리가 500km”라고 느끼는 것은, 자동차 없이는 사실상 이동이 어려운 교통망과 같은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구조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근 전철’과 같은 지역 간 연결성이 부족한 상황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내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의 경쟁력 약화 역시 ‘생태계’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다.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했던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뒤처지는 주요 원인은 파운드리 생태계 전반에서의 협력 부족에 있다. 반도체 생산은 칩 설계, 디자인, IP(지적 재산권) 기업, 파운드리, 그리고 패키징 및 후공정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삼성전자가 IP 파트너 수나 패키징 기술 등 생태계 전반에서 TSMC에 비해 열세에 있는 것은, 단독적인 기술 개발 노력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다. ‘생태계 전쟁’으로 바뀐 시장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협력업체와의 상생 및 기술 교류를 통한 전체 생태계의 번성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현재의 어려움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세상사의 대부분은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를 이해하고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방 도시의 원도심 공동화와 혁신도시의 고립, 그리고 산업 현장의 경쟁력 약화는 모두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정책적 실패의 결과다. 만약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 당시 이러한 문제들에 직면했다면, 그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경제야, 바보야” 대신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생태계를 고려한 정책 설계만이 비로소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진정한 문제 해결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