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산업재해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통계 수치나 업무상의 변수로 치부될 수 없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에 깊은 상흔을 남기는 사건이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약 13만 6천 명의 산업재해자와 2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광업, 건설업, 제조업 등 특정 업종과 소규모 사업장에서의 사고가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문제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 문화, 그리고 기술 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270만 명이 산업재해나 직업병으로 사망한다고 보고하며, 이는 15초마다 한 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생명을 잃는 심각한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안전관리 체계와 대응 역량 부족으로 사고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는 산업재해 대응 방식을 기존의 ‘예방’ 중심에서 ‘예측’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적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2025년부터 추진되는 ‘제조안전고도화기술개발사업’을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이 사업의 핵심 목표는 업종별 사고사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여 사고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식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초기 적용 대상 업종으로는 사고 규모가 크고 반복되는 사고 유형이 뚜렷한 이차전지, 석유화학, 섬유 산업 등이 선정되었다. 예를 들어, 2024년 6월 발생했던 화성시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는 31명의 사상자를 내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고, 섬유 산업은 수작업 공정과 유해물질 사용으로 인해 끼임, 절단, 넘어짐 등의 인적 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다.
산업안전을 기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끼임 사고가 총 3만 8584건에 달하는 등, 사고 유형별로 수년간 누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판단하도록 학습하는 시스템이 이론적 단계를 넘어 실증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정부는 ‘제조안전 얼라이언스’라는 협업 구조를 통해 기업, 연구기관, 지자체가 데이터를 공유하고 현장에서 기술을 실증하는 체계를 마련하며 기술의 현장 적합성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미 조선업계에서는 AI 기반 안전 시스템이 해외 수출로 이어진 성공 사례도 존재한다.
하지만 산업 환경의 급변하는 조건 속에서 안전 문제는 단순히 숙련이나 경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공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작업자는 다양해지며, 작업 환경의 변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술은 예측과 판단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그 기술이 현장에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실질적인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작업자의 목소리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산업안전은 자동화 기기나 정교한 시스템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운영하고 기술을 적용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보호하려는 조직의 의지와 문화가 함께 만들어져야 비로소 진정한 안전이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기술적 진보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AI 기술은 작업자의 스트레스, 행동 이상, 피로도 등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고령자, 외국인 근로자, 신규 인력 등 다양한 취약계층을 고려한 포용적 기술 개발 또한 필수적이다.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현장 구성원의 인식과 조직 문화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술, 정책, 사람이라는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안전한 산업 환경으로의 변화가 현실이 될 것이다. 산업현장의 노동이 더 이상 생명의 위험과 맞바꾸는 일이 되지 않도록, 고도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산업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낯선 현장의 리스크에도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안전 문화를 이루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책임이며, 예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사회적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