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심각한 일자리 불균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사유 없이 일하지 않고 쉬는 ‘쉬었음’ 청년이 4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발표는 청년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첫해 대비 20만 명 이상 증가한 수치로, 지난 2020년부터 2022년 일시적 하락을 제외하고도 지속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쉬었음’ 청년들의 이탈은 단순히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최저시급 이하의 급여, 열악한 업무 환경, 강압적인 분위기, 직장 내 괴롭힘 등 비합리적인 노동 조건 때문이다. 이들이 희망하는 일자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연봉 2823만 원, 통근시간 63분 이내, 주 3.14회 이하의 추가 근무, 개인의 성장 및 경력에 도움이 되는 업무 등 ‘상식적’인 수준의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상식적’ 일자리조차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일자리 상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는 증가하는 반면, 청년 일자리는 감소하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8월 기준으로 청년 일자리는 1991~2025년 사이에 약 200만 개가 감소한 반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368만 개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1991년 8.3배였던 청년 일자리/65세 이상 일자리 비율은 올해 0.8배까지 떨어졌으며, 지난해부터는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나는 한국의 심각한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이다.
이러한 일자리 문제는 궁극적으로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의 문제이며, 특히 신산업 육성의 실패가 청년 일자리 부족을 야기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었던 제조업은 1991년 전체 일자리의 약 27%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15%로 급감했다. 이는 일본이 50년에 걸쳐 진행한 탈공업화가 한국에서는 33년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한국의 제조업이 미국이 만든 산업 생태계 내에서 생산 부문에만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제품 설계나 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사업 서비스는 선진국에 의존하는 ‘자기 완결성 결여’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줄어든 제조업 일자리를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인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다. 자영업자 평균 소득이 급여 생활자 평균 소득의 35%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의 초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이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그리고 고령화로 이어지며, 자영업자의 고령화 역시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5년 25%였던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지난해 37%까지 급증했다. 반면, 신산업 육성 실패는 청년 일자리 감소로 직결되어, 25~34세 취업자 규모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월 606만 명에서 올해 8월 535만 명으로 70만 명 이상 감소했다. 65세 이상 취업자는 같은 기간 339만 명 증가했다.
이처럼 고령층은 은퇴 후에도 레드오션인 자영업이나 정부 주도 일자리에 의존하는 반면, 청년 일거리는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은 한국 산업 생태계의 심각한 병폐를 드러낸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기술 혁명, 즉 인터넷 및 IT 혁명, 플랫폼 사업모델, 데이터 혁명, 그리고 AI 혁명에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IT 강국, 신성장 동력 육성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다는 것은 우리의 혁신 노력이 좌절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AI 3대 강국 및 초혁신 경제로의 대전환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실패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AI 대전환이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간의 산업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한강의 기적’이 미국이 만든 산업 생태계의 일부를 담당하는 ‘식민지형 산업화’였다면, AI 3대 강국은 ‘자기 완결형’, 즉 선진국형 디지털 생태계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미국, 중국 등과 달리 디지털 생태계의 출발점인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을 배출하는 현재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AI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 기존 교육 시스템은 과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과 협력하여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한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플랫폼 사업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도, ‘위계와 경쟁’ 중심의 제조업 생산 조직 문화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이 ‘분산, 이익 공유,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 모델의 문화와는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플랫폼 사업 모델을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진화에 실패한 점도 ‘데이터 혁명’ 및 ‘AI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한 원인이다. 이는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모바일 기기 제조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조차 AI 대전환 과정에서 2류 기업으로 전락한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AI 기반 산업체계의 대전환에서 인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AI 모델을 활용해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즉 ‘AI 3대 강국’은 인재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에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과 ‘쉬었음’ 청년 대상 AI 교육 생활비 지원 등 ‘AI 전사 육성’을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실패한 산업 정책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 및 기득권과의 ‘결별’이 필수적이다. ‘AI 전사’는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환경의 산물인 모노칼라 인재를 양산하는 현행 교육 시스템과는 양립 불가능하다. 영국이 근대 산업 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 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과 사회 지배 세력의 교체, 그리고 사회 혁신을 바탕으로 한 산업 혁명 덕분이었다.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혁명 없이 성공적인 AI 대전환은 어렵다. AI 인프라와 AI 모델에서 2대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18.9%에 달하는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AI 전사들에 의한 새로운 시도들이 활성화되려면 우리 사회는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 결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유를 보장하기 위해, ‘쉬었음’ 청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기적 사회소득 제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시드머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