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정부 예산안은 단순히 경기 부양을 위한 일시적 조치를 넘어,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방향 전환형 확장’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총지출 728조 원으로 전년 대비 8.1% 증가하는 ‘확장재정’은 경기 둔화와 인구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과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미래 성장 축을 재편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 총수입이 3.5% 증가에 그치는 반면 총지출은 54조 7000억 원 늘린 것은 재정의 적극적인 ‘마중물’ 역할을 통해 미래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 발표의 배경에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 수요 증가, 산업 구조 전환, 기후위기 대응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인 변화와 새로운 국가적 과제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채무 1415조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51.6%의 비율 상승은 단순한 재정 악화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적 변화와 필수 투자에 따른 점진적인 흐름으로 분석된다. 민간의 자생적 회복만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로 인해, 정부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투자가 불가피한 시점이라는 것이 이번 예산안의 핵심적인 문제 인식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으로 정부는 고성과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고 저성과·중복 사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AI 3강 도약을 위해 고성능 GPU 1만 5000장을 추가 확보하고, ‘AX 스프린트 300’ 프로그램을 통해 300개 생활밀착형 제품에 AI를 신속히 이식하는 등 AI 예산을 3조 3000억 원에서 10조 1000억 원으로 3배 이상 확대한다. 연구개발(R&D) 예산 역시 19.3% 증가한 35조 3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ABCDEF'(AI, 바이오, 문화콘텐츠, 방위산업, 에너지, 첨단제조업) 분야 핵심 기술 고도화와 5년간 100조 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유망 기업 스케일업 지원에 나선다.
‘모두의 성장’이라는 축에서는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8세로 높이고,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하여 납입액을 매칭 지원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엮는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24만 명에게 월 15만 원을 지급하고, 지역거점 국립대 육성을 위한 예산을 40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증액하며, 지방 의료 및 교통 인프라 보강도 포함한다. 또한 재난대응, 첨단국방, 한반도 평화 인프라 투자 확대, 에너지 전환을 위한 RE100 산단 및 분산형 전력망 구축, 전기차 전환지원금 지급, 녹색금융 확대, 문화·관광·콘텐츠 분야 투자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등 민생 보강 장치도 병행한다.
확장재정의 재정 건전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이 추진된다. 연례성 행사·홍보성 경비를 포함한 경상비를 줄이고, 중복·저성과 사업 1300여 개를 정비하며, 의무지출 제도의 틈새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약 27조 원을 절감해 핵심 과제에 재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줄일 것은 줄이고, 키울 것은 키우는’ 체질 개선 없이는 확장재정이 재정 건전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선택은 불가피하다.
정부는 또한 중장기적으로 총지출 증가폭을 점차 줄이고, 2029년에는 국가채무 비율을 50% 후반에서 관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는 미래 복지 비용과 경제 전환에 필요한 재정 여력을 확보하고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전략이다. 지금의 국가채무 증가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전환을 이끌고 미래 안정과 성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책임 있는 대응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앞으로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운용 속도를 조절하며, 국가채무 관리와 경제 활력 제고라는 두 목표를 균형 있게 추구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총수입 증가율이 총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당분간 GDP 대비 4% 안팎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있으며, 금리와 환율 변동성은 국채 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세입 기반 확충과 지출 효율화라는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세원 포착 및 과세 형평성 제고를 위한 세제 정비, 사회보험 재정 구조 개선, 성과 중심의 예산평가 제도화 노력 없이는 ‘확장 후 정상화’ 시나리오가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AI 전환과 R&D 확대가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고, 수출·투자가 회복되어 세입이 견조해진다면 채무 비율 상승은 관리 가능한 범위에 머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사업 우선순위와 배분의 정밀성, 지역·세대 간 형평에 대한 더욱 엄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2026년 예산안은 경기 대응을 위한 일시적 재정 부양이 아닌, 성장의 엔진을 교체하고 사회안전망의 그물을 더 촘촘하게 엮는 ‘방향 전환형 확장’을 선택했다. 핵심은 속도와 질의 균형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예산 누수를 막고, 미래 투자에서 확실한 성과를 창출하며, 중장기적으로 총지출 증가 속도를 다시 낮추는 세 단계를 일관되게 실행할 때, 이번 확장재정은 재정 불안을 키우는 비용이 아닌 체질 개선을 위한 투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빚을 내서라도’가 아니라 ‘빚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장의 조건을 바꾸자는 제안 위에 2026년 예산안은 그 현실적인 타협점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