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정부 예산안이 총지출 728조 원, 전년 대비 8.1% 증가하는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경기 둔화와 인구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이번 예산은 단순히 경기 부양을 위한 일시적 재정 투입이 아닌,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근본적으로 교체하고 사회안전망을 더욱 견고히 구축하려는 ‘방향 전환형 확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는 ‘빚을 내서라도’ 성장하겠다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빚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 구조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2026년 예산안의 현실적인 타협점을 보여준다.
총수입이 674조 2000억 원으로 3.5% 증가에 그치는 반면, 총지출은 54조 7000억 원 늘어나면서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는 경기 둔화와 인구구조 변화가 야기한 구조적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과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성장 축 자체를 바꾸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다. 정부는 고성과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고 저성과·중복 사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국가채무가 1415조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51.6%까지 상승하는 상황은 단순히 재정 악화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 수요 증가, 산업 구조 전환, 기후위기 대응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변화와 필수적인 국가적 과제 수행을 위한 점진적인 흐름으로 이해해야 한다. 민간의 자생적 회복만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지속 성장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투자는 불가피하다.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 계획은 이러한 맥락을 명확히 한다. 당장은 투자 중심의 확장 기조를 유지하되, 점차 총지출 증가폭을 줄여 2029년에는 국가채무 비율을 50% 후반에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는 미래 복지 비용과 경제 전환에 필요한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전략이다. 지금의 국가채무 증가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전환을 이끌고 미래의 안정과 성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책임 있는 대응으로 평가받는다. 향후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운용 속도를 조절하며 국가채무 관리와 경제 활력 제고라는 두 가지 목표를 균형 있게 추구해 나갈 것이다.
이번 예산안의 핵심은 AI, 바이오, 문화콘텐츠, 방위산업, 에너지, 첨단제조업 등 ‘ABCDEF’ 분야의 핵심 기술 고도화와 신산업 육성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 있다. AI 분야에서는 고성능 GPU 1만 5000장을 추가 확보하고, 300개의 생활밀착형 제품에 AI를 신속히 이식하는 ‘AX 스프린트 300’ 프로그램을 통해 AI 예산을 3조 3000억 원에서 10조 1000억 원으로 3배 이상 확대했다. R&D 투자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 3000억 원으로 19.3% 늘렸으며, 5년간 100조 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유망 기업의 스케일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모두의 성장’이라는 축에서도 사회안전망 강화 노력이 돋보인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8세로 상향하고,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하여 납입액을 매칭 지원한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24만 명에게 월 15만 원을 지급하고, 지역거점 국립대 육성을 위한 예산을 40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대폭 증액했다. 지방 의료 및 교통 인프라 보강, 재난대응, 첨단국방, 한반도 평화 인프라 투자도 확대된다. 또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 RE100 산단과 분산형 전력망을 선제 구축하고, 전기차 전환 지원금과 녹색금융을 확대하여 민간의 전환 비용 부담을 완화한다. 문화·관광·콘텐츠 분야의 소프트파워 투자와 지역 관광 활성화, 지역사랑상품권 등 민생 보강 장치도 병행된다.
확장재정의 재정 건전성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단행된다. 연례성 행사·홍보성 경비 등 경상비를 줄이고, 중복·저성과 사업 1300여 개를 정비하며, 의무지출 제도의 틈새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약 27조 원을 절감하여 핵심 과제에 재투자할 구상이다. ‘줄일 것은 줄이고, 키울 것은 키우는’ 체질 개선 없이는 확장재정이 재정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선택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총수입 증가율이 총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당분간 GDP 대비 4% 안팎에서 유지될 전망이며, 금리와 환율 변동성은 국채 조달 비용을 상승시킬 수 있다. 따라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입 기반 확충과 지출 효율화라는 두 가지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세원 포착과 과세 형평성을 높이는 세제 정비, 사회보험 재정구조 개선, 성과 중심의 예산평가 제도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확장 후 정상화’라는 시나리오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AI 전환과 R&D 확대가 생산성 개선으로 빠르게 이어지고, 수출·투자가 회복되어 세입이 견조해진다면 채무 비율 상승은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유지될 수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사업의 우선순위와 배분의 정밀성, 지역·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더욱 엄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2026년 예산안은 단순한 경기 대응을 넘어,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을 교체하고 사회안전망의 그물을 더욱 촘촘히 엮는 ‘방향 전환형 확장’을 제시한다. 핵심은 속도와 질의 균형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누수를 막고, 미래 투자에서 확실한 성과를 창출하며, 중장기적으로 총지출 증가 속도를 다시 낮추는 세 단계를 일관되게 실행할 때, 비로소 확장재정은 재정불안을 키우는 비용이 아닌, 대한민국의 체질 개선을 위한 투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빚을 내서라도’ 성장하겠다는 과거의 접근 방식을 넘어, ‘빚을 감당할 수 있도록’ 경제의 근본적인 조건을 바꾸자는 제안 위에 2026년 예산안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