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AI 기반 산업체계의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 ‘인재’ 부족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AI 강국에 비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체가 바로 인재인데, 현재 한국의 교육 및 산업 생태계로는 이러한 인재 양성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I 3대 강국’이라는 야심찬 목표 또한 인재 없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인재 부족 문제는 ‘쉬었음’ 청년 증가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 증가라는 극명한 고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발표는 청년 고용률의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주며, 구체적인 사유 없이 쉬는 청년이 2020년부터 4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청년 세대의 나약함을 탓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쉬었음’ 청년 대부분은 최저시급 이하의 낮은 급여, 열악한 근무 환경, 사적 심부름 강요,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견디지 못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경험 있는 노동력이다. 이들이 희망하는 것은 특별한 일자리가 아니라, 연봉 2823만 원, 통근시간 63분 이내, 야근 주 3.14회 이내,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업무 등 ‘상식적인’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기본적인 일자리조차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일자리 상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 증가는 급증하는 반면, 청년 일자리는 급감하는 추세로 요약된다. 8월 기준으로 청년 일자리는 1991~2025년 사이에 약 200만 개가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368만 개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청년 일자리와 65세 이상 일자리 비율은 1991년 8.3배에서 올해 0.8배까지 떨어져, 지난해부터 고령층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OECD 국가 평균에서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의 59%도 되지 않는 반면, 한국은 고령층 일자리 증가와 더불어 청년 일자리 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일자리 문제는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산업 자체의 문제이며, 특히 청년 일자리 부족은 신산업 창출 부진과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제조업은 1991년 전체 일자리의 27%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15%에 불과하다. 일본이 50년에 걸쳐 진행한 탈공업화가 한국은 33년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제조업이 미국 중심의 산업 생태계에서 생산 부문에만 특화하여, 제품 설계나 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사업 서비스는 선진국에 의존하는 ‘자기완결성 결여’ 상태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줄어든 제조업 일자리는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인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고, 자영업자의 소득은 급감하며 한국형 ‘소득의 초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심각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그리고 고령화로 이어져 자영업자의 고령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2015년 25%에서 지난해 37%까지 급증했다. 반면, 신산업 육성 실패는 청년 일자리 감소를 초래했으며, 25~34세 핵심 노동력 규모는 외환위기 직전 1997년 8월 606만 명에서 올해 8월 535만 명으로 70만 명 이상 감소했다. 30~34세 일자리 역시 1991년 8월 310만 명에서 2025년 8월 294만 명으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65세 이상 취업자는 339만 명이나 늘어났다. 이는 고령층이 레드오션인 자영업이나 정부 주도 일자리에 의존하는 반면, 청년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 한국 산업 생태계의 심각한 병증을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기술 혁명, 즉 인터넷 및 IT 혁명, 데이터 혁명, 그리고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 ‘IT 강국’ 및 ‘신성장동력 육성’ 등으로 대응했지만,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는 실패했다.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과 초혁신 경제로의 대전환에 사활을 거는 배경이다. 하지만 AI 대전환이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난 30년의 산업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한강의 기적’이 선진국이 만든 산업 생태계의 일부를 맡는 ‘식민지형 산업화’였다면, AI 3대 강국은 자기완결형 디지털 생태계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한국의 디지털 생태계 출발점인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을 배출하는 현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AI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현재 교육 시스템으로는 새로운 과제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과 협력하여 전에 없던 답을 만들어내는 인재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이 미국처럼 플랫폼 사업모델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도, ‘위계와 경쟁’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이 ‘분산, 이익 공유, 협업’이라는 플랫폼 사업 모델의 문화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플랫폼 사업 모델을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면 진화하지 못한다. 이는 한국이 ‘데이터 혁명’ 및 ‘AI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이며, 삼성전자조차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에서도 AI 대전환에 적응하지 못해 2류 기업으로 전락한 배경이다.
AI 기반 산업체계의 대전환에서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I 모델을 활용하여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 달성 또한 인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 인식하에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을 제공하고, ‘쉬었음’ 청년들에게 AI 교육과 생활비까지 지원하는 ‘AI 전사 육성’ 방안을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의 실패한 산업 정책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이나 기득권과의 ‘결별’이 절실하다. ‘AI 전사’는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의 산물인 모노칼라 인재를 양산하는 현 교육 시스템과는 양립할 수 없다. 영국이 근대 산업 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 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과 그에 따른 사회 지배 세력의 교체, 사회 혁신들의 결과물이었다.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혁명 없이는 성공적인 AI 대전환은 어렵다. AI 인프라와 모델 강국임에도 20%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는 중국의 상황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AI 전사들의 새로운 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 결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유를 제공하기 위해, ‘쉬었음’ 청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기적 사회 소득 제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소득의 제도화야말로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시드머니가 될 것이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이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 민들레학교 설립자 및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