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울산 장생포 앞바다는 풍요로운 해양 자원의 보고였으며, 이는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산업이었다. 그러나 현재 장생포의 고래 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 흔적만이 남아 애도와 향수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사라진 산업, 사라진 생업, 사라진 포경선의 기억은 이제 한 점의 고기 속에 담겨 음미된다. 이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과거를 애도하고 회상하는 의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생포는 예로부터 고래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리적 이점을 지녔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며, 태화강, 삼호강, 회야강 등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부유물과 플랑크톤은 새우를 비롯한 작은 물고기들의 서식지를 형성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고래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고, 특히 ‘귀신고래’는 장생포의 단골손님이었다. 또한, 깊은 수심과 조수간만의 차이가 적은 지형은 대형 선박의 접안을 용이하게 하여 어업 활동이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실제로 장생포는 한때 ‘개가 만 원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부유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수출입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들이 빼곡했으며, 6~7층 규모의 냉동창고도 즐비했던 당시의 모습은 장생포가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번영의 이면에는 산업 발전의 그림자도 존재했다. 1980년대 조성된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제련소, 석유화학공장, 중화학 기업들이 집중되면서 심각한 중금속 중독 질환인 ‘온산병’이 발생했다. 구리·아연 제련소에서 배출된 납, 카드뮴, 수은 등이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했으며, 이는 산업 발전이 지역 사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1973년 남양냉동을 시작으로 세창냉동까지 냉동창고 운영에 부침을 겪다가 결국 폐허가 된 냉동창고는 이러한 산업적 변화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이러한 과거의 아픔과 산업의 변화 속에서 장생포는 새로운 의미를 찾고 있다. 2016년 울산 남구청이 폐허가 된 냉동창고 건물을 매입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를 개관했다. 이 문화창고는 6층 규모에 다양한 체험장과 전시실을 갖춘 복합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을 마련하여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별 전시관, 갤러리, 미디어 아트 전시관 등은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에어장생’ 항공 체험, 종이 고래 접기 등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부터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 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는 세대를 아우르는 매력을 지닌다. 또한, 수십 년 된 냉동 창고 문을 그대로 살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활용하는 것은 ‘업사이클링’의 좋은 사례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것은 2층에 상설 전시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이다. 이곳은 울산 석유화학단지가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심장부로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부모 세대가 온몸으로 체험했던 울산 석유화학단지의 성장은 당시의 애환과 더불어 현재 세대에게도 깊은 감동과 성찰을 안겨준다.
한편, 장생포의 고래 산업은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결정으로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고래고기는 장생포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전해지듯, 고래고기는 여전히 장생포의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 대부분 밍크고래 등 혼획된 고래만을 합법적으로 유통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과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일두백미(한 마리에서 백 가지 맛이 난다)’라고 할 정도로 고래 한 마리에서 나는 다양한 부위와 맛은 ‘모둠수육’이나 ‘고래육회’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쇠고기와 닮은 붉은 살코기, 쫄깃한 ‘우네’, 기름과 살코기의 조화가 일품인 ‘오배기’ 등 각 부위는 조리법과 소스에 따라 다채로운 맛을 선사한다.
결론적으로,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한 식사 공간을 넘어선다. 그곳에는 사라진 산업, 사라진 생업, 사라진 포경선의 향수를 담은 ‘애도와 향수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고래로 꿈을 꾸었던 어부들, 고래 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피란민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이 장생포에 녹아 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과거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