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저출생과 급속한 고령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 직면해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지역사회 내 어르신들의 숫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단순히 통계 수치의 증감을 넘어, 세대 간의 유대감을 희석시키고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정책 기조는 각 세대가 직면한 개별적인 문제에 집중해왔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아동 돌봄 및 육아 지원, 청년층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그리고 고령층의 복지 및 의료 서비스 강화 등, 각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분리된 지원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같은 동네에 거주하더라도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제약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공적인 공간의 감소를 야기했다.
이제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모든 세대가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연령통합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연령통합사회는 복잡한 개념이 아니라, 어린이, 청년, 중장년, 어르신 등 모든 연령층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시와 동네를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원 옆 벤치에서 어르신들이 독서를 하고, 청년들이 지역 마을카페에서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며 일하는 풍경이 일상이 되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바로 연령통합의 핵심 목표이다.
이러한 연령통합사회로의 전환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OECD는 ‘모든 세대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 Ages)’라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도시 공간 내에서 세대 간의 만남과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 세대를 잇는 공동체 공간 마련, 그리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강화와 같은 구체적인 변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카페, 유치원, 시니어케어 시설 등이 함께 배치된 주거단지 설계 방식이 해외에서 시도되고 있다.
연령통합사회는 단순히 여러 세대가 한 공간에 모여 사는 것을 넘어, 세대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동네 공간, 나이와 상관없이 접근 가능한 교통 및 서비스 시스템, 그리고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유도하는 커뮤니티 디자인이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 테네시 주 녹스 카운티에 조성된 세대혼합형 놀이터가 이러한 시도의 한 예이다.
중요한 것은 연령통합이 단순히 복지 정책의 한 부분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생활 환경 전반의 설계와 운영 방식이 통합적인 관점에서 재편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청년 주택과 고령자 주거 시설을 완전히 분리하는 대신, 동일한 단지 안에서 서로의 삶의 리듬을 공유하고 존중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상호작용’은 연령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단순히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세대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체계적인 서비스와 프로그램, 그리고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주는 디자인적 요소들이 결합될 때 진정한 연령통합이 실현될 수 있다.
현존하는 대통령 선거 공약들은 저출생 대응을 보육, 양육비, 주거 지원 중심으로, 고령사회 대응은 돌봄과 의료체계 강화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분명 필요한 부분들이지만, 여전히 세대별로 지원 대상을 구분하여 바라보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세대를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접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연령에 따라 정책을 세분화하는 것을 넘어, 전 생애주기를 포괄하고 세대 간의 연결을 강화하는 정책적 틀 마련이 시급하다. 새 정부는 이러한 전환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공간, 정책, 서비스 설계 전반에 걸쳐 ‘연령통합’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주길 기대한다. 이는 단순히 복지 혜택을 확장하는 차원을 넘어, 세대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 사회를 더욱 촘촘하게 연결하는 도시와 사회를 구축하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보편적인 사실, 그리고 모두가 한때는 아이였고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도시와 정책이 잊지 않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출산 통계와 고령 인구가 어린이를 앞질렀다는 뉴스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나이와 세대를 가르는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간과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귀중한 전환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세대는 분리하고 나눌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제는 세대를 잇는 도시, 나이를 넘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연령통합사회를 그려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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