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중동 분쟁, 네팔 시위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안보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며, 대한민국 역시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음에도 안보 위험에서 예외일 수 없다. 특히 AI 기술의 고도화는 전쟁과 혼란의 양상을 더욱 정교하고 일상 깊숙이 침투시키고 있어, 안보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2년 전 온라인 해외 봉사 중 경험했던 갑작스러운 경보와 방공호 대피 상황은 안보가 일상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절감하게 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대한민국 외교부는 2021년부터 ‘세계신안보포럼(World Emerging Security Forum, WESF)’을 개최하며 변화하는 신안보 위협에 대한 글로벌 협력과 정책 방향 모색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포럼의 창설국이자 주최국으로서 의제 설정과 파트너십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포럼은 매년 시대 흐름을 반영하여 주제를 선정해왔는데, 2021년에는 신안보 위협의 다양성과 대응 방향을 탐색했으며, 2022년에는 다차원 사이버 위협과 국제 협력을 논의했다. 2023년에는 사이버 공간과 신기술 위협에 대한 협력 방안을 모색했으며, 지난해에는 AI 및 첨단기술 기반 안보 도전과 혁신 대응에 초점을 맞추었다. 올해 포럼은 ‘하이브리드 위협의 진화와 국제 안보’를 주제로 심층 토론을 펼쳤다. 이처럼 세계신안보포럼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안보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제사회 내 신안보 거버넌스 구축 및 규범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공고히 하는 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5년 9월 8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개최된 제5회 세계신안보포럼에는 정부, 국제기구, 학계, 민간 전문가 20여 명과 온·오프라인 참석자 약 1,000명이 모여 국제 안보의 현 흐름을 공유하고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이광형 KAIST 총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카림 하가그 소장을 비롯한 다국적 주요 인사들이 축사를 전했다.
이번 포럼의 핵심 의제는 ‘생활의 연속성’이었다. 이는 전력, 의료, 교육, 통신 등 필수 서비스가 중단 없이 유지되어 국민 일상의 안전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문제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포럼에서는 인지전, 신기술 위협, 핵심 인프라 회복력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폭넓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송태은 국립외교원 교수의 좌장 하에 허위·오정보가 선거, 재난, 지역 갈등을 악화시키고 딥페이크 음성이 금융 사기와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현실이 소개되었다. 패널들은 커뮤니티 중심의 디지털 리터러시 강화, 다층 협력체계 구축, 위기 상황 표준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 마련을 통한 사회적 회복력 도모를 강조했으며, 인도주의 원칙을 손상하지 않는 국제규범 마련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었다.
두 번째 세션은 SIPRI의 시빌레 바우어 연구원이 좌장을 맡아, 생성형 AI, 드론, 이중용도 기술 등이 전시와 평시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사이버와 물리 공격이 동시에 발생하는 ‘그레이존’ 위협 현상을 논의했다. 책임 있는 AI 운영을 위한 모델 감사와 내부 점검, 고위험 사용처 제한, 국제법과 수출 통제 연계 방안이 공유되었으며, 산업계, 학계, 정부 간 협력 모듈의 표준화를 통한 산업 보안 투자 확대 제안도 나왔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제임스 설리번 연구원이 좌장을 맡아, 국가 핵심 인프라가 물리적·사이버 위협에 노출되어 작은 장애가 연쇄적 마비로 확산될 위험성을 지적했다. 평상시 취약점 점검과 훈련, 정보 공유의 일상화가 중요하며, 사고 발생 시에는 격리, 대체 경로 가동, 복구 시간 단축을 통해 국민 일상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명확히 했다.
이처럼 세계신안보포럼은 창설국이자 주최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신안보 리더십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이었다. 국제사회의 신안보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생활의 연속성’ 확보를 위한 실천적이고 다차원적인 대응 방안 모색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과제다. 허위 정보, 사이버 공격, 핵심 인프라 교란 등이 민생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인지전 대응 체계의 표준화, 책임 있는 AI 운용 제도화, 핵심 인프라 복구 시간 중심의 민관 협력 훈련 정례화는 시급한 정책 과제다. 정부와 민간, 학계가 긴밀히 협력하여 국민 일상을 위한 신안보 대응 기반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