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국제사회가 기후대응과 통상정책을 연계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이러한 흐름이 두드러지며, 보호무역주의 기조 속에서 기후변화 규범의 파편화가 진행되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각 국가의 사정을 고려해 기후변화 대응 속도를 자율적으로 조절해왔으나, 이제는 국제협력 기반 약화와 더불어 기후위기 심화로 인해 통상 정책의 핵심 요소로 기후변화가 부상하고 있다. 이는 2024년 기후-통상 연계 이행 경과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보고 의무 시행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처럼 특정 제품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이 보조금 지급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기업의 제품 경쟁력이 곧 탄소 배출량 감축과 직결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수출 제품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탄소 배출량 측정 및 감축 노력이 기업 생존의 필수 과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 속에서 기후-통상 연계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수단은 바로 기후기술 확보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초불확실성 속에서도 에너지전환 투자 전략을 유지하거나 더욱 집중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5월 설문조사 결과, 향후 18개월 내 투자 분야로 ‘탈탄소/저탄소 기술’이 42%로 1위를 차지했으며, 2023년 9월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0%가 에너지전환 전략에 기존보다 더 집중하거나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이러한 기후기술 경쟁 가속화의 동인으로는 기술 가격 하락과 확산의 선순환, 미국 IRA와 EU NZIA 등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정책 지원,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강한 의지가 꼽힌다. 태양광 설비 가격이 지난 10년간 10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하며 재생에너지 보급 확산으로 이어진 사례나, AP몰러-머스크가 연료 수급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을 위해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발주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기술 가격 하락이나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정책 확산이라는 동인이 한국에는 충분히 적용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한국은 전력망이 고립되어 있고 전력 시장이 유연하지 못하며, 자연자원 또한 제한적이다. 또한, 한국 기업은 시장 선점을 위한 ‘first mover’보다는 ‘fast follower’ 전략에 익숙해 있어, 새로운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단기 감축 규제 및 기술 지원에 대한 정책 신호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후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효과적인 투자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특허 빅데이터 활용이 제안된다. 전체 기술 정보의 80% 설명력을 가진 특허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망 분야 선정, 핵심 기술 파악, 기술 벤치마킹 등에 활용한다면 기후 기술 확보 전략 수립 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기술 중 35%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거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술이라는 분석은, 아직 시장 선점 기회가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2023년 12월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결과는 한국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COP28 결정문에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대, 에너지 효율 2배 개선,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등의 합의 사항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30년 국가 감축 목표 달성 경과를 포함한 보고서를 2024년까지 제출하고, 2025년까지는 더 야심 찬 2035년 국가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또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 기간 동안의 배출 기준 및 허용량 설정 등 국가 법정 계획 수립이 정부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합의는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기업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 요구를 증대시킬 것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기후-통상 연계 가시화, 기후기술 경쟁 가속화, 한국의 특수성, 그리고 COP28 결과에 따른 국내외 후속 조치들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전략을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내외 정책 및 전략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